오늘은 5일장이 서는 날입니다.
마치 경사가 난 것처럼 새벽부터 온 마을에 활기가 돕니다.
춘식이네는 텃밭에서 갓 뽑아낸 열무중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짚으로 묶어
다발을 만들고 물외와 애호박을 지게에 지고 갑니다.
우리는 닭장 회대에 앉아 있는 장 닭 두 마리를 잡아 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나도 장에 따라가기로 한 신나는 날입니다.
왜냐구요?
장에 가면 별의별 물건을 구경할 수 있고 운 좋으면 눈깔사탕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장날이 되면 사람들은 전부 멋쟁이가 됩니다.
청년들은 머릿기름을 발라 한껏 멋을 내고는 장으로 갑니다.
이 더운 여름에 머릿기름은 왜 바르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장에 갈 때 머릿기름을 안 바르면 사람들이 무시하나 봅니다.
신작로를 따라 읍내까지는 아마 십리는 족히 될 듯싶습니다.
오순이 아버지는 돼지를 몰고 장으로 갑니다.
어미 돼지를 팔고 새끼 돼지로 바꾼다고 합니다.
돼지 녀석이 똥꼬를 씰룩거리며 걷는 폼이 우스꽝스럽습니다.
장 초입에 들어서자 장사꾼 아저씨가 다가와 닭을 팔라고 사정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닭을 안 팔고 버팁니다.
팔려고 나왔는데 얼른 안파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결국 다른 장사꾼에게 팔고는 돈을 건네받습니다.
장에 들어서니 왁자지껄 시끄럽습니다.
고무신 전에서는 검정 고무신을 마주치며 큰소리로 손님을 부릅니다.
노란 생고무 바닥에 하얀 옷을 입은 꼬마 고무신이 다소곳이 앉아있습니다.
난 내 검정 고무신을 내려다보았습니다만 아직 떨어지려면 멀었습니다.
어물전으로 돌아드니 커다란 바닷고기들이 지천으로 누워 있고
농기구 전에는 낫과 호미들이 까만 얼굴로 촌스럽게 앉아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얼음과자였습니다.
짐바리 자전거 뒤에 “아이스케끼”라고 쓰인 파란 통을 실은 청년과
께끼를 먹고 있는 아저씨의 입이 내 눈을 붙잡아 놓습니다.
그 아저씨는 유별나게 쪽쪽 소리를 내며 빨아 먹습니다.
청년이 구성지게 소리 지릅니다
“아~이스 케끼! 어~얼음 과자! 앙꼬 아~이스케끼! 1개에 2환!”
청년의 목소리가 똑똑 떨어지고 우렁찹니다.
께끼 통 옆구리에서는 차디찬 물이 줄줄 흐릅니다.
그 물에 손바닥을 갖다 대니 한겨울의 얼음물처럼 손이 시립니다.
아까운 케끼가 다 녹아버린 건 아닌가 싶어 입맛을 보니 단 맛이 나지는 않습니다.
난 그 청년의 입을 쳐다보며 흉내를 내보지만 음률이 참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쇠스랑 한 자루와 데드롱(1)으로 된 남방을 한 벌 사셨습니다.
조심스레 아버지 표정을 살피며 아이스케끼 청년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혀 딴청이십니다.
정말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려고 애를 쓰면서도 사달라는 말은 차마 못했습니다.
내손을 잡은 아버지가 손에 힘을 주어 끌고 가십니다.
난 연신 케끼통을 뒤돌아보며 힘없이 따라갔습니다.
조용해진 신작로로 나오자 아버지는 유과를 한 알 주십니다.
전 같으면 신이 났을 터인데 별로 신이 안 납니다.
아이스케끼를 쪽쪽 빨아먹던 아저씨의 입술만 떠오를 뿐입니다.
1) 데드롱 : Tetron, 포리에스텔 섬유, 화학사로 만든 옷감
** 아이스케키는 한국전쟁이후 사카린이나 설탕 등을 얼려서 만들었다. 팥 앙금을 넣어 얼린 것은 앙꼬아이스케키라고 불렀으며 값은 두배 더 비쌌다. 1962년에는 삼강산업이 바를 만드는 기계를 도입하여 소위 ‘하드’로 불리는 막대 달린 아이스크림 종류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후 해태가 덴마크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부라보콘’이라는 제품을 생산하면서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는 아이스크림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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