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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놀자귀신들

25. 멍석위의 여름 밤

 

달이 점점 살쪄갑니다.

아마 백중이 멀지 않았나 봅니다.

나는 돌덩이처럼 단단한 찐 우유덩이를 주머니에 넣고 춘식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춘식이네도 저녁을 막 마친 뒤였습니다.


춘식이 어머니가 남포불(1)을 훤히 켜 놓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십니다.

춘식이 아버지는 헛간에서 둥근 덕석(멍석)을 꺼내 와 모깃불 옆에 펴주십니다.

늘 상 하던 그 모습입니다.


난 주머니에서 찐 우유덩이를 꺼내 한번 갉아 먹은 후 춘식이에게 주었습니다.

그 우유덩이는 학교에서 급식으로 받아 온 우유가루를 밥 위에 쪄 만든 것입니다.

마치 카바이드처럼 단단한 우유덩이는 며칠 동안 먹어도 끝이 없습니다.

춘식이 어머니가 감자와 유월강낭콩을 쪄서 내오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뜨거운 감자를 먹고 있으니 백구가 컹 짓다말고 내 입만 쳐다봅니다.


고개를 돌리니 생 울타리 밖에서 지만이가 춘식이를 부르며 사립문을 밀고 들어옵니다.

애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니 덕석이 가득 찹니다.

우유덩이를 번갈아 한번씩 갉아 먹는 바람에 침이 잔뜩 묻어 젖어 있습니다.


모깃불을 피웠지만 우리 주위에서는 모기떼들이 기회를 엿보며 날아다닙니다.

큰 덕석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라디오에서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물론 좀 있으면 “전설따라 삼천리”가 나오겠지만 어른들은 잔소리 같은 아나운서의

소리를 들으며 걱정도 하고 “죽일 놈!”이라며 화도 내십니다.


우리들은 덕석위에 발랑 누워 하늘을 보니 별들이 유난히 잘 익었습니다.

가끔 별똥별이 빗금을 치며 쏜살같이 사라집니다.

수많은 별들이 떨어지지 않고 우리 머리위에 매달려 있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선생님 말씀은 우리 지구와 같이 흙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시는데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무거운 별이 왜 떨어지지 않을까요?


별들이 점점 흐릿해져 가고 달도 이상하게 작아져 갑니다.

아득히 먼 곳으로 몸이 둥둥 떠가는 것처럼 기억이 가물거리며 자꾸 오줌이 마렵습니다.

난 이곳저곳 측간을 헤매며 소변을 보려하지만 왠 일인지 소변이 잘 안나옵니다.

몇 번을 오줌 누러 갔다가 오줌이 안나와 그만두고 결국은 안골의 계곡에 가서

시원하게 오줌을 누니 한없이 오줌이 나옵니다.


이젠 별도 달도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춘식아 뽈깡(2) 인나그라!”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춘식이 아버지가 마당을 쓸고 계십니다.

새벽안개가 그득한 게 오늘도 무지 더울 모양입니다.

일어나보니 이상하게도 고슬고슬하던 멍석이 흠뻑 젖어 있습니다.

키를 둘러쓰고 소금세례를 안받았던 것만도 다행이었습니다.


1) 남포불 : 석유 램프

2) 뽈깡 : 벌떡의 남쪽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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