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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놀자귀신들

20 첨으로 불쌍해보인 아버지

 

“ 워메! 먼 날이 요렇게 덥다냐? 큰일 났구마~안!“

마을 어른들이 한숨을 쉬며 걱정들을 하십니다.

파란 하늘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이 정말 장작불 앞에라도 앉아 있는 듯합니다.


아버지는 오늘 아침 일찍 논으로 가셨습니다.

어제 저녁 기다란 대 막대기 끝에 바가지를 매달고 계시는 것으로 보아

논에 물 푸러 가신 게 분명합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더운 날 더구나 시오리는 족히 넘는 논까지 심부름을 시키십니다. 


아버님 점심 심부름을 다녀오라는 것입니다.

보리밥, 풋고추, 된장, 열무김치, 감자를 보자기에 싸 주십니다..

아침에 가실 때 아주 점심을 가지고 가시면 될 터인데 아버지도 이상하십니다.


대가리 벗어질 만큼 더운 날 논에 가는 건 정말 싫습니다.

뒤란에서 대나무 막대를 끄집어 내 왔습니다.

왜냐구요?

먼 길을 갈 때 대 나무 막대 끝 V자형 가지를 이용하여

땅에 밀고 가면 먼 길도 가까워 보입니다.

한손에는 밥을 들고 한손에는 대 막대기를 밀며 구불구불 농수로를 따라 갔습니다.


더위에 지쳐 축 늘어진 망초 꽃을 따 물위에 띄워 놓고 내려다보며 걸어갑니다.

그는 빙그르르 돌며 늑장을 부리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무성한 물풀에 걸려 살려 달라고 애원합니다.

가끔 돌부리에 막대가 걸려 배를 쑤시기도 합니다.


금새 늙은 포플러가 서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포플러가 있는 언덕에 오르면 멀리 우리 논이 보입니다.

밀짚모자를 쓴 아버님도 자꾸 포플러 쪽을 쳐다보신 듯 합니다. 

배가 고프신 게 분명합니다.


망초 꽃과 나는 한 몸으로 몰입이 되어 둥둥 떠갑니다. 

어느 순간 내 몸이 부~웅 뜨는가 싶더니 앞으로 팩 고꾸라졌습니다.

왼손에 들고 있던 점심 보자기는 여지없이 개울에 쳐 박히고 말았습니다.

무릎에서는 피가 나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대나무는 손바닥을 후벼 파 놓고 말았습니다.


얼른 물속에 내려가 보자기를 꺼내드니 밥은 이미 물 말아져 있고

열무김치는 깨끗이 목욕하여 국물이 하얗습니다.

감자는 그런대로 먹을 만 합니다.

겁이 덜컥 났습니다.


난 질질 물이 흐르는 보자기를 들고 아버님께 갔더니 말은 없으시지만

무척 반기시는 눈치입니다. 

”아부지! 오다가 물에 빠졌어!“

“에이! 녀석!”

아버지는 보자기를 열어보시더니 더 이상 나무라지 않으시고

감자를 껍질도 안 벗기시고 볼이 터질듯 맛있게 드십니다.

무척 배가 고프신 모양입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노라니 목에서 하늘의 태양보다 뜨거운 불덩이가 올라오는 듯 합니다. 

태어나서 첨으로 아버지가 불쌍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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