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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놀자귀신들

18. 물레방아 만들던 날!

 간밤에 내린 비로 개골창(1)에 물이 그득 차서 흘러갑니다..

동구 밖으로 나서자 지만이가 논배미 물꼬(2) 밑에서 고무신으로 물을

퍼 담으며 놀고 있습니다.

녀석의 바지가 거의 흘러내려 엉덩이 두 쪽이 다 보입니다.


벼 포기 사이에 떠있던 수많은 생이가래(3)가 불어난 물을 따라 흘러 내려옵니다.

논두렁에 심어놓은 콩들도 고개를 젖히고 힘없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안산 허리를 휘감은 구름들이 이제야 화가 풀린 듯 서서히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워!”

몰래 다가가 갑자기 지만이 등을 두드리자 깜짝 놀라 물에 주저앉고 맙니다.

화가 난 지만이가 고무신으로 물을 퍼 나에게 뿌리자 깔깔 웃으며 도망갔습니다.

도망가다 보니 아무래도 내가먼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야 할 듯싶습니다.

불현듯 물꼬에다 물레방아를 만들어 돌리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난 춘식이네 마당 구석에 쌓인 보릿대 비늘로 다가갔습니다.

보릿대로 물레방아 날개를 만들면 가볍게 잘 돌기 때문입니다.

춘식이네 누렁이가 킁킁 코를 불더니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갸웃하고 날 쳐다봅니다.

근데 춘식이는 어디 갔는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보릿대 비늘에서 보릿대를 뽑다 말고 깜짝 놀라 오금이 저리고 말았습니다.

그곳에는 보릿대 색깔과 똑같은 내 팔뚝보다 더 굵은 구렁이가 처마 밑 돌담 틈새에서

검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야!”

깜짝 놀란 나의 자지러지는 소리에 춘식이 아버지가 뒤란에서 돌아 나오며

의아한 듯 턱짓으로 묻습니다.

“어서 존데로 가거라 잉!”

춘식이 아버지는 구렁이를 보더니 마치 애들 달래듯 말을 합니다.


“아따! 업(4)이 크기는 크구마 잉~!”

삽을 들고 지나가던 복례아버지가 한마디 거듭니다.

구렁이는 기다란 몸을 스르르 움직여 초가지붕 속으로 사라집니다.

정말 그 구렁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춘식이네 집 수호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렁이의 가는 꼬리가 흐물흐물 사라지자 어느새 춘식이가 나타나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씽긋 웃습니다.


우리는 보릿대를 강아지 풀 줄기에 꿰어 물레방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울타리에서 Y자 가지를 꺾어 물꼬에 세워 보릿대를 걸치니 뱅글 뱅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3개의 물레방아가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가끔 생이가래가 물레방아에게 시비를 걸면 펄쩍 뛰듯 멈췄다가는 돌곤 합니다.


그들이 도는 것을 보고 있자니 빙글 어지러워집니다.

가끔 앉았다 일어날 때처럼 어지럽습니다.

물레방아는 얼마나 어지러울까요?


“앗! 미꾸라지다!”

넘쳐흐르는 길바닥으로 꼬리를 비틀며 새끼미꾸라지 올라옵니다,

얼른 고무신을 벗어 놓고 손을 오므려 미꾸라지를 잡으려 하지만 녀석은

손 틈으로 요리조리 빠져 나갑니다.

결국 우리들의 집요한 포획작전에 걸려든 미꾸라지가 손에서 몸을 비틉니다.


“지만아! 고무신 이리 갖고 와!”

지만이가 일어서 고무신을 찾는다는 것이 그만 잘못하여 고무신을 건들자

내 고무신은 개골창 위로 둥둥 떠갑니다.

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고무신을 잡으러 개골창으로 뛰어들었습니다만

검정 고무신은 너울너울 떠내려갑니다.


춘식이와 지만이가 맨발로 떠내려가는 고무신을 잡으려 냅다 달립니다.

영리한 춘식이가 무조건 앞으로 달려가더니 납작하게 배를 깔고 길에 엎드려

손을 쭉 뻗은 채 고무신이 떠내려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춘식아! 고마워!”

내가 씽긋 웃자 지만이도 따라 웃습니다.

온몸이 젖은 우리가 되돌아오니 아직도 물레방아는 돌고 있습니다.


1) 개골창 : 수채물이 흘러가는 작은 도랑

2) 물꼬 : 논에 물이 넘어 들어오거나 나가게 하기 위하여 만든 좁은 통로

3) 생이가래 : 물 위에 떠서 자라는 풀로 잎은 세 개씩 돌려나며 두 개는 물 위에 뜨고

     한 개는 물속에서 뿌리 구실을 함

4) 업 : 한 집안의 살림을 보호하거나 지켜주는 동물로 업귀신이라고도 부름


*** 보릿대 물레방아는 보통 보릿대 3개를 5-10Cm로 잘라 가운데에 바랭이나 강아지 풀줄기를 꽂은 후 흘러가는 물에 걸쳐 놓아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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