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 망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다우다(1) 보자기에 싼 하지감자가 꼴 망 속에서 엉덩이 밑까지 축 처져
걸을 때마다 엉덩이를 툭툭 칩니다.
돼지에게 먹일 풀은 논둑 밭둑에 있는 시계풀이나 독새기(2)를 베면 됩니다만
땔감으로 쓸 풀은 산에서 베어 와야 합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풀 섶에서 수많은 새끼 메뚜기들이 튀어 오르고
이따금 송장메뚜기도 튀어 날아오릅니다.
송장메뚜기를 보니 여름이 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 쌀쌀 가!”
뒤따라오던 동생이 늑장을 부리며 짜증을 냅니다.
온통 벌겋게 벗어진 민둥산에는 별로 풀이 없습니다.
깊은 산골로 들어가면 풀이 우거져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곳까지 갈 엄두를 못 내고
항상 가던 안산에서 조금 벗어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곳에는 산지기가 지키는 이씨네 문중 산이 있고 우리키보다 큰 풀이
지천으로 우거져있습니다만 그것은 그림의 떡입니다.
실은 며칠 전 몰래 그 풀을 베다가 들켜 혼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망태를 벗어놓고 이리 저리 풀을 찾아 베기 시작했습니다.
억새풀은 조심해서 베어야 합니다.
잘못하면 풀잎에 손을 베기 일쑤이거든요.
동생은 꼴을 베다 말고 꼴 망 옆에 앉아 낫으로 땅을 찍으며 해찰을 합니다.
“언넝 비어!”
내말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습니다.
풀을 한줌 베어 꼴 망에 집어넣고 나도 벌렁 누워 버렸습니다.
하늘에는 흰 구름 한점이 마치 살아 있는 듯 굼실굼실 모양을 바꿉니다.
내가 맘속으로 오른쪽으로 퍼지라고 명령을 하면 정말 내 맘대로 움직여 줍니다.
“성! 배고파! 감자 묵자!”
눈을 뜨니 동생이 보자기에서 감자 한 알을 꺼내 나에게 줍니다.
“야! 언능 비자!”
비로소 동생도 낫을 들고 풀을 찾아 나섭니다.
나는 멀리 바위 뒤에 우거진 싸리나무를 발견하고 곧장 그리고 갔습니다.
싸리나무를 왼손으로 틀어쥐어 낫을 대다 말고 깜짝 놀랐습니다.
싸리나무 밑에는 옴팍 파인 꿩의 보금자리가 있었고 꿩알이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난 혹시 누군가에게 들킬 가 가슴을 두근거리며 조심스럽게 동생을 불렀습니다.
꿩 알은 자그마치 12개나 되었습니다.
근데 아직까지 꿩 알이 따뜻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가느다란 깃털과 부드러운 풀잎이 깔린 꿩의 보금자리가 보드랍습니다.
“어무니! 근데 꿩은 없더라!”
“엉! 꿩이 물 묵으러 갔는갑다!”
꿩알을 가져왔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습니다.
1) 다우다 : 평직 견직물로 태피터를 잘못 부르는 것
2) 독새기 : 둑새풀의 사투리로 보리와 섞여 겨울을 나는 식물
***퇴비와 땔감으로 필요한 풀은 산속에 있는 풀이라야 했다.
시계풀이나 독새기는 말리면 한줌도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선낫을 들고 꼴 베는 것이 하루 일과 중의 하나였다. 물론 꼴 망은 새끼를 엮어 어깨 끈을 달아 짊어지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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