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메~“
해거름이 되자 난 춘식이를 뒤따라 나섰습니다.
저수지 둑 밑에 메어 있던 춘식이네 소가 뒷자락을 길게 뽑아대는 게 구슬프게 들립니다.
올 봄에 새끼를 낳아 튼실하게 자란 송아지와 함께 멀리서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춘식이네 소는 우리같이 키가 작은 어린애들 말도 참 잘 듣습니다.
한 가지 흠이라면 마치 거북 등처럼 엉덩이에 덕지덕지 말라붙은 쇠똥이
볼 때마다 칠칠치 못하다는 생각이 든 것뿐입니다.
우리가 다가가자 송아지가 껑충껑충 뛰며 엄마 뒤로 살짝 몸을 숨깁니다.
나는 아직도 소가 무서워 만지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춘식이는 입과 볼테기(1)도 잘 만집니다.
소를 몰고 둑방으로 올라서자 넓은 저수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멀리 우리 마을의 집집마다 하얀 저녁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소목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마치 군악대 연주 하듯 박자를 맞춰 줍니다.
외양간에 소를 집어넣고 집에 오니 식구들이 멍석 위에서 저녁을 드시고 계십니다.
돌확에 싹싹 갈아 삶은 보리밥 냄새가 참 고소하게 납니다.
우물에서 막 길어온 차디찬 물에 뜨거운 보리밥을 말아 입에 넣으니 술술 넘어갑니다.
작년에 담갔던 오이장아찌를 조금씩 베어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서
다시 춘식이한테 달려가니 녀석이 아직까지 밥을 퍼먹고 있습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숨바꼭질을 하기로 해 놓고는 늑장을 부리니 얄미워집니다.
뒤에서 지만이 소리도 들립니다.
동네 애들이 얼추 여남이나 모였습니다.
금새 춘식이네 마당이 북새통이 됩니다.
춘식이 아버지가 나가 놀라고 해도 우리들은 막무가내입니다.
그래도 숨바꼭질은 춘식이네집이 제일 낫기 때문입니다.
마당이 넓고 숨을 곳도 많으니까요.
춘식이 아버님이 허청에서 말려둔 풀과 보리타작 후 남은 보리 까시락(2)을
한 소쿠리 퍼내어 모깃불을 사르십니다.
우리는 술래를 정하고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술래는 아랫집에 사는 우리또래의 오순이었습니다.
장독대로 숨으려다 춘식이 엄마한테 지청구를 듣고는 외양간으로 숨었습니다.
어둑한 외양간으로 들어가니 소는 아직도 입을 오물거리며 뭔가를 먹고 있습니다.
새끼 송아지가 엄마소의 등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다가 내가 들어가니
벌떡 일서서서 꽁무니 쪽으로 자리를 피합니다.
소는 우리가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줄 아나 봅니다.
내가 들어가도 놀라지 않고 어둠 속에서 큰 눈만 껌벅이며 제 할일만 하니까요.
하나둘 애들이 술래에게 들켰습니다.
하지만 난 안전지대입니다.
술래인 오순이가 외양간 쪽으로 오는 것이 보입니다.
바로 들킬 것만 같아 오금이 저려 옵니다.
난 더 깊이 숨으려다가 그만 덜퍼덕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가 쇠똥과 오줌으로 범벅이 되어있습니다.
엉덩이가 축축해 너무 기분이 찜찜합니다.
숨바꼭질이고 나발이고 하기가 싫었습니다.
내 스스로 걸어 나오니 오순이는 뒤로 묶은 머리를 나풀거리며 술래 집으로 뛰어가
찾았다며 찍고는 좋아합니다.
울상이 되어 춘식이 아버지께 외양간에 빠졌다고 말하자
큰소리로 웃으시며 우물가로 나를 데려 가시더니 바지를 홀라당 벗기고 씻어 주십니다.
춘식이 아버지 손도 울 아버지처럼 까칠까칠합니다.
혹시 오순이가 볼까봐 창피합니다만 밤이라 그래도 다행입니다.
술래였던 오순이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춘식이랑 다른 애들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어댑니다.
모깃불 연기가 우물가로 매캐하게 흘러오며 여름밤이 깊어갑니다.
갑자기 오순이가 보고 싶어지는군요 .
1) 볼테기 : 볼따구니의 방언
2) 까시락 : 까끄라기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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