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로에 있는 방앗간을 가려면 낯선 골목길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 길을 지날 때면 그 동네 애들이 시비를 걸어 올까봐 기가 죽곤 합니다.
사실 난 우리 동네에서만 까불고 천방지축 날뛰는 방안퉁소(1)입니다
언젠가 그 골목을 지날 때 콩만 한 놈이 길을 가로막고 자기를 해보느냐고
시비를 걸어와 한대 쥐어박은 박았더니 근처 처마 밑에 놀고 있던 덩치 큰 애들이
우르르 달려와 여지없이 내 코를 때려 코피가 나고 만적이 있습니다.
춘식이랑 같이 갈 때는 무섭지 않은데 혼자가면
마치 똥개가 다른 동네 지나갈 때 꼬리 내리 듯 기가 죽고 맙니다.
한낮이 가까워오는지 짜리몽땅한 내 그림자가 발에 밟힙니다.
머리위에서 이글거리는 해가 금방이라도 가죽을 벗길 듯 펄펄 끓습니다.
혹시나 힘센 녀석들을 만날까 흙 담벼락 그늘에 바짝 붙어 걸으며 녀석들이 놀던 곳을
흘끗 쳐다보았습니다.
다행이 녀석들은 보이지 않아 맘을 놓는 순간 미끄러져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가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지만 개똥을 밟아 미끄러져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곳저곳 지천에 널려있는 개똥이 어떤 것은 하얗고 단단하게 말라있기도 하지만
금방 싸 논 것들은 대부분 물개 똥(2)입니다.
난 그 물컹한 물개 똥을 밟고 만 것입니다.
고무신을 벗어 담벼락 돌에 쓱쓱 문질러 대충 똥을 닦아내고 신작로로 나서니
멀리서 방앗간이 우웅 울어대며 똥구녁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고 서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목에 보리 까시락(3)이 붙은 듯 가렵습니다.
방앗간 마당 시렁에는 갓 뽑은 국수발이 마치 광목 널어놓은 것처럼
시누대(4)에 하얗게 걸려있습니다.
한 가닥을 끊어 맛을 보니 짭조롬합니다.
방앗간 안에서는 눈썹이 하얗게 분칠된 동네 어른들이 귀에 바짝 대고
말을 건네며 분주히 국수발을 받아내어 걸고 있습니다.
”어무니!“
어머니는 수건을 벗어 탈탈 털어 똬리를 올리고 다라이를 머리에 입니다.
거름종이에 둘둘 말린 국수들도 나란히 누워 둥둥 떠갑니다.
배가고픈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따라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화덕에 불을 붙였습니다.
측간 옆에 쌓아둔 보릿대비늘에서 보릿대를 뽑아와 불을 지피니 더더욱 덥습니다.
어머니가 팔팔 끓는 물에 국수를 넣자 국수들이 금방 온순해집니다.
우물에서 갓 길러온 찬물에 사카린을 타 국수 한 그릇을 비우니 한여름이 서늘해집니다.
1) 방안퉁소 : 방안에서는 큰소리를 치면서도 밖에 나가면 말 한마디 못하는 내성적인 사람을 두고 일컫는 말
2) 물개 똥 : 물똥을 이르는 말
3) 까시락 : 까끄라기의 방언
4) 시누대 : 일반 대보다 가늘고 마디가 긴 대나무로 전라도지방에서 부르는 이름
*** 개들은 항상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서는 배설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텃밭이나 길가에 배설을 하곤 하는데 개를 많이 키우던 그 시절에는 배설물이 너무 많아 자칫 한눈을 팔면 밝기 일쑤였다. 물론 딱딱하게 굳은 배설물은 주워다가 거름으로 쓰기도 하고 하얀 똥은 약으로 쓰기도 했다 ***
'유년기의 놀자귀신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 아이스케끼 (0) | 2004.08.13 |
---|---|
22. 숨바꼭질 (0) | 2004.08.09 |
20 첨으로 불쌍해보인 아버지 (0) | 2004.07.27 |
19. 여름방학 하던 날! (0) | 2004.07.20 |
18. 물레방아 만들던 날! (0) | 2004.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