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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우리는 추억을 만들려고 사는거 아닐까?

래프팅은 무슨 재미가 있을까?

흐르는 계곡물에 고무보트 띄워놓고 물길 따라 내려오는 뱃놀이가

과연 재미있을까?

TV에서나 보던 젊은이들의 놀이로만 알고 있던 래프팅을 떠났다.

옛날 뗏목타기에서 오늘날의 레저스포츠로 발전한 래프팅의 내력을 보면

옛사람이나 우리나 몸 어딘가에 감춰진 놀이인자는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항상 주도적인 동생이 근 일 년 만에 귀국한 조카들을 위해

이벤트를 찾다보니 래프팅이란 놈이 걸려들었다.

가족, 친척 13명이 래프팅을 하기로 했는데 나는 어쩔 거냐며 물어왔다.

지천명하고도 한참이 지난 내 나이에 괴이하게 래프팅이라니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럴싸한 핑계거리로 빠지겠다고 선언을 했다.


“자꾸 빠지면 가족들한테 왕따 된다?”

아내 또한 나이 들수록 함께하지 않으면 외톨이가 된다며 은근히 부추긴다.

난 마치 끌려가는 당나귀처럼 새벽길을 더듬어 철원으로 향했다.

늦여름 오락가락하는 빗방울을 보며 폭우가 되길 은근히 기대했건만

내속을 알리 없는 햇살이 간간이 내비친다.

여행을 통해 동질성을 회복하고 스킨십을 통해 우애를 다지는 것이

더없이 좋은 일이건만 난 거추장스럽고 마음이 심란하다.


우리가 도착하자 삼삼오오 모여앉아 시간을 때우던 까맣게 그을린

청년들이 다가와 주차안내를 한다.

불량기 가득한 시골마을 청년회원들이 법에도 없는 입장료를 받으러들듯

들판에 간이천막을 쳐놓고 미끼를 기다리는 폼이다.


돈을 계산하자 예약 때는 말이 없던 부가세가 따로 있단다.

사업자가 아닌데 웬 부가세냐며 실랑이를 하다말고 불쾌해진 동생이

조카들 앞에서 내색을 못하며 애써 부화를 가라앉히고 있다.

울며 겨자 먹는 것이 이런 것인가?

난 그만 돌아가고 싶건만 성질이 급한 동생이 용케도 참아낸다. 

‘그래 세월이 흐르면 나이는 헛방으로 먹는 게 아니로구나.’


모두들 헬멧을 쓰고 구명조끼를 입었다.

그런데 이른바 꼬리끈이라는 멜빵끈을 엉덩이 뒤에서 사타구니 사이로

끼어 앞으로 걸어 매란다.

똥꼬를 씹는 모양세가 우습기도 하지만 점잖지 못해 느슨하게 끈을 맸다.

그 꼬리끈이라는 것은 구명조끼가 위로 벗어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란다.


“자 지금부터 준비운동을 합니다.”

검게 그을린 안전요원이라는 청년이 마치 유격 훈련 조교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이른바 피티체조라는 팔 벌려 높이뛰기를 시키더니 물에 누우란다.

원래 수영에는 젬병인지라 금방이라도 고개가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아

겁이 덜컥 났다.

방정맞게도 래프팅을 즐기다가 불귀의 객이 된 뉴스가 떠오른다.

감기 올지 모르니 우의를 입고 타겠다며 억지를 쓰던 아내는 옷을 입은 채

물속에 누우라는 안전요원을 야속한 듯 바라본다.


노 젓는 법을 배우고 주의사항을 들은 후 마치 이순신 장군 함대가

진을 치 듯 주변을 맴돌다 급류를 향해 내닫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여울목을 지나 급류로 향하자 보트 앞에서 역류하는 물결이 마치

혀를 날름거리는 용가리 혀 바닥처럼 느껴졌다.

맨 앞에 앉은 나는 혹시 몸이 튕겨져 나가 버릴까봐 안전요원의 지시대로

급류를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노를 저었다.

돈 내고 노동을 하다니......


 

여울을 벗어나자 그제야 한탄강의 깎아지른 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래프팅이 아니라면 그 풍광을 가까이서

 

보기가 쉽지 않은 협곡은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의 축소판이 아닌가 싶다.

절벽의 기암들이 어떤 것은 물개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거북이 같은

형상으로 조물주가 흙장난하다 만 듯하다.


뒤따라오는 보트에서 조카들은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니

초등학교 시절 그들을 끌고 휴가를 떠났던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고무튜브 하나씩 허리에 끼고 바닷가에서 물장구치던 코흘리개들이 이제는

30이 가까운 청년이 되었으니 세월이 빠르기는 이곳 여울보다 더 빠르다.


래프팅이 끝나갈 무렵 안전요원이 유도하는 게임에 속아 뒤로 발랑 떨어져

물을 한 모금 먹고 보니 이대로 죽는 건 아닌지 무섬증이 들어

겁이 덜컥 났다.

다리가 땅에 닿지 않은 것이다.

옆에 있는 제수씨 또한 파랗게 질려있다.

언젠가 해수욕장에서 파도에 휩쓸려갈 뻔한 그런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구명조끼 덕에 떠있기는 하지만 점점 가라앉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

금방이라도 다리에 경련이 날듯 뻣뻣해지기 시작한다.

1미터도 안 되는 곳에 보트가 있건만 왜 그리 멀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보트는 우리를 놓고 천천히 흘러내려가며 거리가 멀어진다.

개헤엄을 쳐서 보트로 접근하려하나 등산화를 신은 내 발은 천근만근이다.

조카 녀석들은 우리의 그런 속도 모르고 보트위에서 물을 튕기며 장난을

걸어온다.

“콱 샤키들아! 작은엄마 물에 빠졌단 말이야”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 애먼 제수씨 핑계를 대며 눈을 흘겼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면 이것도 추억이 될까?

어쩜 우리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사는 건 아닐까?

0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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