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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놀자귀신들

27 당원 섞은 미숫가루

 

오늘은 아침부터 허청에서 잠자리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방학 숙제에 곤충채집이 들어 있거든요.

근데 왜 숙제에 곤충채집이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곤충채집은 누구 못지않게 잘 하지만 아직까지 매미는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나무를 잘 타는 춘식이조차 매미를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녀석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 잡으러 올라가면 어는 새 소리를 멈추고는

푸르릉 날아 가버리기 일쑤입니다.

방학책 속의 철수가 들고 있는 매미채만 있으면 까짓 거 문제도 아닌데....


낡은 대 바구니에 둘러 쳐있는 얇은 대 날을 뽑아내어 장대 끝에 둥그렇게 엮었습니다.

춘식이 녀석의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습니다.

우리는 잠자리채로 거미줄을 걷기 시작 했습니다.

각시거미줄 보다 토박이 거미인 왕 거미줄만 골라 걷어냈습니다.

왕 거미줄은 제비가 걸려도 못 빠져나올 만큼 찐득거립니다.

거미줄로 도배한 잠자리채를 들고 뒤란에서 잠자리를 몇 마리 잡았습니다만

결국 매미는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야! 춘식아! 우리 여치 잡으러 가자!”

“시방은 여치 없어!”

싫증난 우리들은 잠자리채를 팽개치고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만이는 보릿대를 엮어 만든 여치 집을 들고 따라옵니다.

여치는 메뚜기보다 배가 불룩 튀어 나왔고 입이 무섭게 생겼습니다.


“여치 운다!”

우렁찬 여치 소리가 더운 한낮을 시원하게 갈라줍니다.

춘식이와 내가 살금살금 다가가자 날개를 부비며 울어대던 여치가 갑자기 소리를 멈추더니

풀잎 뒤로 몸을 살짝 감춥니다.


“아얏!”

내 고무신 사이로 가시가 파고들어 발바닥을 찌릅니다.

내가 오두방정을 떠는 바람에 여치는 저쪽 풀 속으로 날아가 숨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빈 여치 집을 들고 털레털레 산을 내려왔습니다.

허탕치고 나니 배도 고프지만 목이 말라 미칠 것 같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냅다 정지(1)로 달려 가 미숫가루를 찾기 시작 했습니다. 

보리를 볶아 방앗간에서 빻아온 미숫가루가 살강 위에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당원(2) 곽도 놓여 있습니다.

키가 작은 나는 까치발을 해 봤지만 닿지가 않습니다.

지만이를 불러 엎드리게 하고는 그 위에 올라섰지만 손이 닿을락 말락 합니다.

그런데 지만이 녀석이 그 순간을 못 참고 꿈틀거립니다.

‘챙그랑!“

미끈하고 넘어지자 살강에 놓여있는 그릇이 정제(2) 바닥에 떨어져 깨지고 맙니다.


춘식이가 퍼온 시원한 물에 당원과 미숫가루 타서 돌려가며 마시기 시작 했습니다.

순서는 내가 맨 먼저 마시고 다음에 춘식이 그리고 지만이 차례로 정했습니다.

우리 집이니까 내가 제일 먼저 마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내가 양껏 마시고 건네주자 춘식이녀석이 벌컥 벌컥 쉬지도 않고 마셔댑니다.

마치 퍼마시는 것이 돼지가 뜬물(뜨물) 마시듯 합니다.

거의 다 마시고 바닥이 보인 바가지를 지만이에게 건네줍니다.


“나 안 묵어!”

병아리 눈물만큼 남은 바가지를 쳐다보던 지만이가 코를 씩씩 불며 울기 일보직전입니다.

“정말? 안 묵어?”

춘식이 녀석은 눈치도 없이 권하지도 않고 마저 마셔버립니다.

지만이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난 배가 부르긴 하지만 깨진 그릇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1) 정지 : 부엌의 방언

2) 당원 : 사카린을 원료로 하여 당도를 낮춘 알약 모양의 화학 감미료

        

** 설탕이 귀한 60년대에는 사카린이라 불리는 화학감미료를 사용하였다. 사카린은 1879년 렘슨과 라팔베르크에 의해 처음 합성되었으며 설탕보다 500배 이상의 당도를 갖고 있다. 그후 사카린의 당도를 설탕의 200배 정도로 줄인 ‘당원’, 뉴슈가‘, ’맛나니‘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였다. 사카린은 체내에 흡수되지 않고 소변으로 곧바로 배출되므로 당뇨환자에게 애용되기도 하였으나 발암물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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