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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놀자귀신들

28. 단 쭈시

 

‘워따! 망 헐 것덜!“

뒷밭으로 몰려가자 춘식이 어머니가 옥수수 밭에서 중얼거립니다.

우리한테 하는 얘기는 분명 아닌 것 같습니다.

옥수수 잎이 가오리 연 꼬리처럼 펄럭이며 서로 비벼대고 서있습니다.

방풍림처럼 빽빽하게 서 있는 옥수수 밭 위로 수건을 쓴 춘식이 어머니 머리가

보일락 말락 합니다. 


다리에 힘줄을 불끈 세우고 서 있는 옥수수 대궁이 사내답게 느껴집니다만

녀석들은 형편없이 볼품없는 꽃을 피웁니다.

금세 말라비틀어지고 색깔도 없는 것이 남들이 꽃을 피우니 따라서 피우는 가 봅니다.

수염이 마른 옥수수는 살이 퉁퉁 쪄있고 연분홍 수염을 보드랍게 늘어뜨린 것은

아직 덜 여물은 것입니다.


그 사이로 풍뎅이들이 날아다니며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는 잽싸게 풍뎅이 몇 마리를 잡아 지만이가 들고 있는 병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마당 쓸기 놀이를 할 참입니다.

마당 쓸기는 풍뎅이 다리를 꺾고 목을 비틀어 땅에 누이면 날개 짓을 하며

땅의 흙을 쓸어내기 때문입니다.


“어무니! 얼렁 짤라줘!”

‘툭툭’ 옥수수를 따는 춘식이 어머니의 손길만 바라보고 있던 춘식이가 조르자

단맛이 날 것 같은 옥수수 대를 골라 잘라주십니다.


“와 방 같다!“

옥수수 대를 들고 동산으로 가려다 보니 옥수수 대가 쓰러져 있습니다.

마른 옥수수 대가 깔려 있는 곳에 셋이 둘러 앉으니 정말 방처럼 아늑합니다.

춘식이 어머니가 화를 낸 것도 알고 보니 바로 이곳 때문이었나 봅니다.


“그 것들이 그랬을 것이여!”

“그 것들? 누구 말이여?”

“아 누군 누구여! 저 아랫동네 놈팽이 허고 발랑 까진 것이제!”

전에도 보리밭 망쳐 놨다고 수군대는데 그들이 한 짓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들이란 춘자 누나와 삼촌을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랫마을 사는 춘자 누나는 항상 생글생글 웃기를 잘하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또 우리가 삼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우리들이 무서워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별로 일은 안하면서 언제나 새까만 안경을 끼고 돌아다녀 혹시 간첩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지서에 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어 포기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남의 밭을 이렇게 망쳐 놓고 욕을 먹으면서까지 싫어하는 짓을

골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옥수수 대 껍질을 이빨로 죽죽 벗겨 단물을 빨아 먹고 퉤퉤 뱉으니 금세 우리가

뱉어낸 옥수수 잔해들이 널브러져 바닥에 가득합니다.

갑자기 혀가 바늘에 찔린 듯 아파 침을 뱉어보니 붉은 피가 침에 섞여 있습니다.

날카로운 껍질에 혀를 베이고 말았습니다.

쭈시(1)대가 빨갛게 물든 것도 호랑이가 우리처럼 피를 묻힌 거라고 합니다.


“춘식아! 일루와!”

춘식이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에 우르르 달려가니 옥수수 밭 한편에 심어 놓은

단 쭈시대 중에서 제일 가느다란 대를 잘라서 주십니다.

옥수수 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당도가 높은 단 쭈시대를 베어주시는

춘식이 어머니가 오늘 한턱을 쓰신 것입니다.


1) 쭈시 : 수수의 남쪽 방언


** 마당 쓸기 놀이는 풍뎅이다리를 잘라내고 목을 비틀어 누이면 날아오르기 위해 갑옷

같은 두꺼운 겉 날개를 열고 잉크 빛 속 날개를 흔들게 된다. 이때 날개 짓에 의해 땅바닥을 빙그르르 돌게 되면서 흙이 밀려 나가며 마치 마당을 쓰는 것처럼 보여 우리가 붙인 놀이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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