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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3. 캄보디아(첫날 밤)

 

호텔풍경

투숙하기로 한 Salina 호텔은 그런대로 깔끔한 편이었다.

우리는 일행과 떨어진 3층에 객실을 배정해준다.

“2층으로 해줘! 일행인데 배려를 해 줘야지”

“그럼 제 방을 쓰시겠어요? 괜찮으시다면......”

가이드의 방은 싱글 침대고 우리 방은 더블인데 좁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얼어 죽을! 싱글이면 어떻고 더블이면 어때?’

사실은 저녁마다 준비해온 팩 소주를 일행과 함께 마시고자 함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로 금 새 온 몸이 끈적거린다.

에어컨을 켜고 커튼을 젖히니 마치 쇠불알 늘어지듯 축 늘어진

야자열매가 바로 코앞에서 우리 방을 기웃거린다.

키 큰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가 마뜩찮게 생각했던 이번 여행을

다소간 가라앉혀 준다.

이 곳에서는 층수를 헤아릴 때 1층을 0층으로 기산하니

우리 방은 3층인 셈이다.


마당에서는 소년과 소녀가 맨발인 채로 마당을 쓸고 있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창밖을 봐도 그들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마당을 쓸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돈 많은 부잣집에 얹혀사는 하인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 옛날 가난했던 시절 식모가 되고 머슴이 되었던

춘자와 판식이가 떠오른다.


끈적거리는 아침에 떠밀려 눈을 떴다.

모닝콜이 울리지 않은 걸 보니 아직 7시가 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시계를 준비하지 않은 나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서성대다

호텔을 빠져나왔다.

핸드폰이 시계를 대신할 거라는 애당초의 내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기지국을 벗어난 핸드폰은 이미 쇳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호텔 정문 앞에서는 낚싯밥을 던져 놓고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청년 몇 명이 ‘툭툭이1)‘를 세워 놓고 손짓을 한다.

’그래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차지하는 거야’

손사레를 치며 정문을 나서니 수많은 자전거와 오토바이 행렬이

도로를 메우고 있다. 더운 날씨를 피해 7시부터 근무를 하고

1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란다.

 

나는 마수의 유혹에 빨려 들어가듯 두리번거리며 맞은편 어두컴컴한

시장으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난장이 걸인 두 사람이 처량한 표정으로 낯선 이방인을

바라본다.

봉천동 중앙시장처럼 넓은 시장에는 점포마다 백열등이 늘어져 있고

액세서리를 파는 점포와 음식을 파는 가게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마치 연리지를 연상케 한다.


긴장을 하며 한발 한발 깊숙이 들어가자 생선포를 뜨는 아낙의

광주리에서  수많은 파리 떼가 잉잉대며 아줌마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털이 홀랑 빠진 수탉이 점포 사이로 활보를 하며

홰를 치더니 똥을 칙 갈기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슬렁거리며

점포사이를 걸어 다닌다.

‘에잇! 더럽게....’

감추고 싶어 하는 그들의 삶을 몰래 훔쳐보기라도 한 듯 무거운

기분으로 빠져나왔다.

 

신작로로 나오자 맞은편 골목에서 역시 맨발인 소년이 노래를 부르며

팔짝팔짝 뛰어오다 말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이상한 듯 나를 훑어본다.

그들이 이상한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

나도 그들처럼 맨발에 팬티만 걸치고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출근할 때마다 넥타이 매는 것은 곧 구속이라는 생각을

지워본 적이 없다.

때문에 몸에 걸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가 곧 진정한 자유의

시발점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의복과 신발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낙원이 바로

여기인 듯싶다.

 

먼지가 풀풀 나는 신작로를 따라 걸어가니  문짝이 없는 이발소 안에서

이발을 하고 있고 바로 그 옆 빵꾸집에서도 타이어 수리를 하고 있다.

이발소와 빵구집은 아무리 봐도 궁합이 맞지 않는다.

이발사에게 카메라를 보이며 찍는 시늉을 하자 흔쾌히 허락을 한다.

아침 마실을 돌고 들어와 그들에게는 성찬인 호텔식을 들자니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계속=


1) 툭툭이 : 오토바이에 인력거를 메달아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간이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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