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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수락산행기

 

수락산으로 접어들자 초겨울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요를 깔아 놓은 듯 푹신한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가는 가을을 아쉬워한다.

수락산 산행을 떠 올려 보았으나 처음 와본 것처럼 낯설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년 늦여름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

별로 힘들지 않게 깔딱고개를 넘었던 만만한 산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은 작년에 못 갔던 정상을 거쳐 돌아 내려오기로 했다.

깔딱고개 목에서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올라가니 그동안 얕잡아봤던 나에게

혼 한번 나보라는 듯 만만치 않은 기세로 제압하려 든다.

산은 어떤 산이던 깔보면 안 된다,

쇠밧줄을 부여잡고 실랑이를 하며 철모바위에 올라서니

남쪽으로 서울과 북쪽으로 의정부가 발아래 장난감처럼 들어온다.


뒤쳐진 일행을 기다리다 선두를 뒤 쫒아 치마바위로 향했다.

코끼리 바위를 지나 치마바위가 있다는데 인색하게도 이정표가 없다.

이름을 참 잘 짓는다는 생각을 하며 코끼리 바위로 향했다.

‘왜 코끼리 바위일까?’

아무리 코끼리를 연상하며 이리저리 올려 봐도 코끼리는커녕 코끼리 코를

닮은 바위조차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가 앉는다.


“여기가 코끼리 바위 맞아요?”

오가는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한결같이 잘 모른단다.

갈림길에서 치마바위 가는 길을 물었지만 그 또한 잘 모른단다.

‘오늘 산에 온 사람들은 나처럼 모두 초행인가?‘

궁시렁대며 무전기로 선두에게 연락하니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오란다.

한참을 내려가고 있으니 길을 잘못 들었다며 무전기에서 목쉰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에 항상 문제가 있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서 확인을 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베어있음은 물론

화자의 말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해석하는 우를 범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관리 9요소 중 오죽했으면 의사소통관리가 들어있을까?


끙끙대며 올라가자 동행한 山友가 무척 힘들어한다.

산을 잘 타던 사람이 오늘은 왠일일까?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따라오지만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갸웃하며 물어물어 치마바위 쪽으로 방향을 돌리자 비로소 산길을 아는

산우가 코끼리 바위라며 친절하게 손짓하여 알려준다.


내가 그린 그림은 그 육중한 바위산이 코끼리일거라며 지레짐작 했건만

그게 아니었다.

그가 가리키는 손끝에는 아스라한 꼭대기에 몇 사람이 가물거리는 곳이었다.

그들이 비켜서는 사이로 마치 고사 지낼 때 올려놓은 돼지 머리마냥

빙긋이 웃는 현상이 나타난다.

내가 보기에는 돼지머리인데 왜 굳이 외국 동물 이름을 붙였을까?

차라리 “꿀꿀이 바위”라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이름 붙이면 좀 좋을까?

몇 발자국 뒤 떨어져 보니 그제야 아기 코끼리 형상이 나타난다.


코끼리 바위를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찰흙으로 방학 숙제 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난 방학 때만 되면 찰흙으로 탱크를 만들어 과제물로 제출하곤 했다.

동물이나 사람의 모습은 빚어내기가 어렵고 그래도 탱크가 만만했기 때문이다.

장난기 많은 조물주도 방학 숙제로 돌을 주물주물 이리저리 만져서

코끼리를 빚어 올려놓은 건 아닐까?

아무리 보아도 코끼리 바위와 떠받치고 있는 육중한 바위가 색깔도 틀릴

뿐만 아니라 얼핏 보아 바위의 재질도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내 다시 이곳에 찾아와 직접 올라가 확인해 보리라.


일행을 만난 시각은 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힘들어하던 산우의 사연을 듣고 보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허기가 지더란다.

산행을 할 때는 반드시 비상식량으로 초코렛을 지참하고 걷는 도중에

체력을 보충해야 하건만 기본적인 수칙을 깜박한 것이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하산하는 내 머릿속에는 자연의 오묘함 앞에서 뽐내거나

깔보면 큰 코 다친다는 교훈이 빙빙 돌고 있었다.

0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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