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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놀자귀신들

12. 파리통 깨어진 날

 

오늘은 낚시를 가기로 하였습니다.

언젠가 건너 마을 청년이 낚시질 하는걸 어깨너머로 본 적이 있었거든요.

우리는 닭장으로 다가가 회대를 고정시켜 놓은 가는 철사를 풀어내었습니다.

철사 끝을 댓돌에 문질러 예리하게 갈아낸 후 물음표처럼 낚시 바늘을 만들었습니다.


거름부대에서 뽑아 낸 굵은 실로 낚싯줄을 대신하고

뒤란에서 잘라낸 대나무로 낚싯대를 만들었습니다.

근데 왜 낚싯대 끝이 가늘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지만아! 얼렁 포리 잡어!”

미끼는 항상 우리를 귀찮게 하던 파리를 쓸 예정입니다.

하지만 파리도 파리채로 두들기면 배가 터져 미끼로 쓸 수가 없습니다.

조심스레 두 손바닥을 조개처럼 오므려 상하지 않도록 잡아야 합니다.


지만이 녀석이 몇 마리 잡다 말고는 꾀를 냅니다.

마루 한 구석에 놓인 파리통 속에 빠져 죽은 파리를 떠올린 것입니다.

파리통은 어항을 세워놓은 모양으로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뭉툭합니다.

파리통 밑에 놓인 밥풀에는 파리 떼가 까맣게 달라붙어 있고

날아오르다 물에 빠진 파리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녀석이 파리통을 들고 파리를 들어내려다가 기우뚱하더니 그만 놓치고 맙니다.


“챙그랑!”

파리통이 산산조각이 나고 물이 토방에서 마당으로 쭈르르 흘러내립니다.

허청 한구석에서 하품을 하며 졸고 있던 백구가 깜짝 놀라 일어나더니

슬금슬금 닭장 뒤로 몸을 숨깁니다.

그 파리통은 여간 비싼 게 아닌데 어머니께 혼날 일을 생각하니 앞이 깜깜 합니다.

지난번에 장에 따라가 보리를 다섯 되나 주고 사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기분으로 안골로 향했습니다.

안골은 맑은 물이 소를 돌다가 멈추어있는 여울이 군데군데 있고 

어떤 여울은 우리키를 훨씬 넘는 곳도 있습니다.

보리밭에 베어 말려놓은 보리깍지들이 후끈하게 더위를 싣고 옵니다.


뻐꾸기 소리가 잦아드는 게 초여름이 분명합니다.

거울처럼 자갈이 들여다보이는 여울에는 종개과에 속하는 피라미들이

떼 지어 노닐고 있습니다.

우리는 숨을 죽이며 파리를 낚시에 꿰어 물속에 담갔으나 물위에 뜨고 맙니다.

고기들은 위에 뜬 먹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딴청만 피웁니다.


꾀를 내어 조약돌을 매달아 담구니 안성맞춤입니다.

숨을 죽이며 고기떼 앞에 낚시를 담구니 덜컥 물어 댑니다.

얼떨결에 낚아채자 우리들 뒤에 있는 보리밭에서 허연 배를 내민 피라미가 펄떡입니다.

심장이 뛰는 긴장감과 성취감에 우리들은 우와 소리를 지르며 조심스레 고기를 빼내

고무신 속에 물을 떠 가두어 놓았습니다.

원! 세상에 이렇게 희한한 일이 또 있을까요?


“앗!“

내가 고기떼들을 노려보고 있자니 갑자기 춘식이가 비명을 지릅니다.

지만이의 낚싯바늘이 춘식이 팔꿈치에 걸린 것입니다.

빨간 피가 흘러나오자 춘식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아픔을 참고 있습니다.

“많이 아퍼?”

지만이가 미안한 듯 어쩔 줄을 모릅니다.


난 쑥을 뜯어 짓이긴 후 상처에 발라주니 쑥을 집어 던지며 꼬라지를 냅니다.

쑥은 정말 쓰리고 아프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집에가 혼날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 낮에는 파리 떼가 극성을 피우고 밤에는 모기떼가 극성을 피우는 시절이었다. 파리를 잡는 방법은 어항을 세워놓은 모양을 한 파리통과 석유에 파리약을 섞은 ’인피레스’를 뿌리는 방법이 있었다. 낮에는 파리통을 놓고 밤에는 ‘인피레스’를 뿌려 온방 가득히 죽은 파리들을 쓸어 담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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