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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놀자귀신들

10. 감똑 줍던 날!

 

“꼬끼오!~”

장 닭이 회치는 소리에 눈을 뜨자 뚫어진 창호지로 희끄무레한 새벽이 손을 내밉니다.

아랫집 춘식이네 닭이 덩달아 목청을 돋우자 둘은 주거니 받거니 새벽을 알립니다. 

벌떡 일어나 툇마루로 나서니 백구 녀석이 꼬리를 치며 맑은 눈으로 올려다봅니다.


눈을 비비며 물을 한 바가지 퍼 마시다 말고 마당에 확 뿌리자

닭들이 펄쩍 뛰며 도망갑니다.

“어따 물 애께야제! 삼식아! 물 질러 와라!”

“알았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뒤란으로 냅다 달렸습니다.

늦게 가면 감똑(1)을 닭들이 짓밟고 치익치익 똥을 갈겨 놓기 일 수이거든요.


감똑이 어제보다는 훨씬 많이 빠져 있습니다.

마치 튀밥을 튀어 놓은 것처럼 나뒹굴고 있는 감똑 속으로 개미들이 들락거립니다.

개미들은 잠도 안자는 모양입니다.


훅 불어 개미를 털어내고 떨떠름한 감똑을 씹으니

침이 한바퀴 돌아 뱃속으로 내려가며 꼬르륵 소리를 냅니다.

다른 때 같으면 뒷밭으로 두런거리며 사람들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릴 법 한데

사위가 조용한 것이 아마 내가 제일 빨리 일어난 모양입니다.


주머니 가득 감똑을 주워 담고 바께쓰를 들고 동네 어귀 우물로 갔습니다.

“워따! 우리 삼식이 이삐다!”

어둑한 우물에서 동네 할머니가 물동이를 이시며 칭찬을 합니다.


두레박이 온몸을 부딪치며 간신히 올라와서는 바께쓰에 한숨을 털어 놓습니다.

낑낑대며 바케쓰를 들고 오니 춘식이가 사립문을 열고 나오다가 바께쓰를 들어줍니다.

춘식이는 누나가 있어 물을 긷지 않아도 됩니다.

나도 춘식이처럼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 항아리에 물을 붓고는 울타리 개구멍을 빠져 나와 언덕에 올라가니

보리밭둑에 맺힌 이슬이 고무신으로 흘러들어 질퍽거립니다.

우리가 항상 앉았던 아카시아 동산의 바위가 말없이 우리를 반깁니다.


주머니에서 감똑을 꺼내 바위 위에 내놓자 춘식이가 집어 먹으며 빙긋 웃습니다.

“개미 붙어 있어! 불고 묵어!”

초가지붕 위로 새벽밥 짓는 연기가 안개와 벗하며 낮게 깔려있습니다.

백구 녀석도 멀리 내려다보이는 밭을 향해 괜히 한번 짖어보더니

우리 옆에 쭈그리고 앉아 명상(?)에 잠깁니다. 


감똑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있으니 지만이가 우리를 부르며 올라옵니다. 

우리는 잽싸게 보리밭 고랑으로 숨었습니다.

이른 아침 보리밭 사이에서는 흙냄새와 풀냄새가 향긋하게 스쳐옵니다.

지만이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더니 힘없이 우리를 부릅니다.

우리는 숨을 죽이며 녀석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뿡!“

갑자기 나도 모르게 방구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런 때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춘식이가 킥킥대며 벌떡 일어섭니다.

난 부끄러워 딴전을 피우며 감똑을 꺼내 지만이에게 내밀었습니다.

아직 눈곱이 덜 떨어진 지만이가 씽긋 웃습니다.


1) 감똑 : 감꽃과 함께 떨어진 어린 감으로 감또개라고도 하고 전라도 일부지방에서는

         감꽃을 말함


*** 가난했던 그 시절 계절마다 군것질거리를 찾아 나서던 시절입니다. 삘기, 찔레 소나무 껍질, 감똑, 맹감, 정금, 산딸기, 보리수, 띠뿌리, 나승개, 칡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군것질의 대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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