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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놀자귀신들

6. 다시는 안 놀아 줄거야!

 

등이 따뜻한 봄날 우리는 삐비(1)를 뽑으러 갔습니다. 

정월 보름날 쥐불놀이로 태운 잔디밭에는 삐비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삐비를 찾아 개울을 따라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멀리 집을 떨어져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맑은 물이 돌돌 구르는 개울가에서 수양버들이 솜털을 벌리고 보시시 웃고 있습니다.

비단 개구리가 옹달샘에 고인 물 속으로 폴짝 뛰어 들어갑니다. 

녀석의 등은 울퉁불퉁 못생겼지만 배는 나리꽃처럼 붉은 바탕에

검은 점을 띄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사위가 고요한 산속에는 왕 삘기가 지천이었습니다.

“야! 그만 집에 가자!”

지만이가 겁이 나는지 졸라댑니다.

“앗! 배암(2)이다!”

춘식이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초록색 새끼 뱀이 허리를 꼬며 길을

가로질러 가다말고 풀숲에서 멈춥니다.


나와 지만이는 춘식이가 막대를 꺾어 올 때까지 긴장한 채 녀석을 바라보았습니다.

녀석은 검은 혀를 날름거리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춘식이가 막대로 후려쳐 걷어 올리자 축 처져 힘없이 매달려 들립니다.


나와 지만이는 춘식이가 들고 있는 막대 끝에서 눈을 떼지 않고

뒤따라 걸어내려 오고 있었습니다. 

땀에 젖은 고무신이 미끌미끌하고 이따금 돌부리에 걸려 발가락이 아픕니다. 

녀석의 하얀 배에 돋은 비늘이 흉측스럽다고 생각하는 순간

막대 끝에 매달린 뱀이 하늘로 오르더니 어느새 내 어께위로 툭 떨어집니다.

난 질겁하여 오줌을 재리고 말았습니다.


춘식이는 배를 잡고 깔깔대며 저만치 도망가서는 뒤돌아보며 웃고 있습니다.

뒤따르던 지만이도 질겁하여 바지춤이 내려와 엉덩이 두 쪽이

다 보이는 줄도 모르고 냅다 뛰어 도망갑니다.

난 약이 올라 울면서 돌 맹이를 들고 뒤 쫒아갔으나

땀에 찬 고무신이 미끄러워 달릴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서 울어대는 종달새 소리마저 방정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를 식식 불며 다시는 안 놀아 줄 거라고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고샅길로 나왔으나 조용합니다.

“춘~식아!”

나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구성지게 춘식이를 불렀습니다.

춘식이가 금방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까 나에게 뱀을 던져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씩 웃는 모습이 비굴해 보입니다.

나는 담벼락에서 흙방아를 찧으며 사과 한마디 없는 춘식이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1) 삐비 : 삘기의 남쪽 방언

2) 배암 : 뱀의 잘못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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