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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6. 캄보디아(호수의 일몰은 없었다)

 

 

서바라이 호수의 일몰은 없었다.


롤레이(Lolei) 사원으로 들어서자 사자상이 입구에서 지키고 있다.

야소바르만 왕이 아버지 인드라바르만 왕을 위해 지은 사원이라는데

우리뿐만 아니라 동방은 모두 효친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예의지국이

아니었나 싶다.

 

온통 유적지인 롤레이 사원 옆에는 바콤 사원이 있고 입구에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교실이래야 툭 터진 콘크리트 건물에 칸막이를 해 놓고

칠판 한 개와 등받이 없는 기다란 의자와 탁자가 전부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칠판들 사이로 오가는 여선생도 학생처럼 작다.


대부분 학교는 사원 옆에 붙어있고 승려들이 가르친단다.

승려는 군인만큼이나 우대를 받기 때문에 마을에서 추천을 받아야

할 만큼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데 그렇다면 누가 돈을 벌고

누가 생산 활동에 참여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 것인가?

문득 농촌 계몽운동이 한창이던 5-60년대의 우리나라 모습이 떠오른다.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경제기적을 이루지

않았는가?

배움에 욕심이 없고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의식이 언제쯤 깨어날까?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인 서바라이

호수로 향했다. 바라이는 저수지라는 뜻으로 농사짓는데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였다.

우리와 함께 달리는 신작로 옆 작은 개울은 물이 말라 들어가고

있었고 흙탕물을 일구며 대나무 삿갓으로 고기를 잡는 꼬맹이들의

눈빛이 순박하다.

파이 한판을 놓고 한 조각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인색한 문명보다는 가난한 그들의 진정한 자유가 부럽다.

스트레스가 없는 곳 그것이 곳 신선의 땅일 것이다.


저물어가는 호수 둑방에 올라서니 수공예 팔찌를 파는 꼬마 애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거뭇한 아주머니가 바구니 가득 방게를 팔고 있다.

방게를 먹는다니 과일 대신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가 없어서 일까?

우리 어릴 적 그 흔하던 방게들이 사라진 연유가 모두 이곳으로

몰려든 때문이 아닐까?

피식 웃으며 거룻배 위로 올라타자 수공예 팔찌를 파는 애들 3명이

배에 오른다.

선장은 몰래 배에 오르려던 사내 장사꾼을 쫓아내고 인형 같은

소녀 3명을 골라 태운다.


“대~한민국!”

소년의 등에 새겨진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를 보고 월드컵 로고송을

외치자 그들도 큰소리로 따라 외친다.

문화의 힘, 그리고 콘텐츠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준다.

어릴 적 서부활극을 보며 그들의 문화에 세뇌 당하던 기억이 스쳐간다. 


거룻배는 중국제 경운기 엔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은 중국이 우리를 추격하는 수준이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를

추월할거라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두려움이 앞선다.


섬에 내려 남국의 일몰을 기다렸지만 쉬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구름 속에 숨어 심통을 부리더니 이내 밤을 맞을 준비를 하고 만다.

섬 한 구석지에서 아까부터 전통악기로 연주를 하던 장애인들이

‘아리랑’을 연주하며 우리들 주머니가 열리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기나긴 전쟁으로 인해 손발이 없는 장애인들이었다.

문득 6.25 이후 상이군인들이 갈고리 손으로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하던 생각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국의 호숫가와 ‘아리랑’은 정말 이국적이다.


하릴없이 섬 주변을 걷고 있자니 인생이 허무하단 생각이 스친다.

넓은 호수 위에 저물어가는 하루가 덧없이 지나버려 안타깝다.

가이드의 손짓에 다가가니 가이드가 ‘두리반’이라는 과일을 건네준다.

어쩌면 인간의 배설물과 똑같은 닮은 냄새가 날까?

혹시 변소에 담갔다가 내놓은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색깔도 그렇고

냄새도 고약하다.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버티는 일몰을 뒤로하고

이른 저녁을 먹은 후 ‘툭툭이’를 타고 유럽인 거리로 나섰다.

유럽인 거리는 대부분 유럽 관광객이 찾아와 맥주를 마시기 때문이란다.

4사람까지 태울 수 있는 툭툭이는 오토바이 인력거인 셈이다.

‘IN-TOUCH’라는 맥주집에서 맥주 몇 병을 시켜놓고 남국의 밤을

맞이하자 통키타와 드럼으로 아리랑을 연주하며 우리의 흥을 돋운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우리를 위해 배려하는 것이다.


나는 역마살이 도져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슬며시 자리를 벗어났다.

한 발작 한 발작 IN-TOUCH를 벗어나 분주한 거리로 빨려 들어가니

맥주 한 병에 75센트라 쓰인 칠판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간판에 매달린 전등불 옆으로 수많은 도마뱀들이 벽에 붙어 모기를

노리는 남국의 밤이 점점 깊어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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