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멀리서 해풍이 촉촉하게 불어온다.
한바탕 비가 몰아올 것 같은 느낌이다.
물 때가 조금이어서인지 들고나는 바닷물이 얌전하다.
강화도 갯벌 서녘으로 지는 해를 뒤로하고 뱀처럼 구불구불 바닷물이 밀려온다.
솟는 태양이 희망이라면 석양은 낭만적인 어둠을 달고 온다.
3형제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강화도를 돌았다.
귀국한 둘째 동생부부를 포함 오랜만에 함께하는 드라이브에 어머니 표정이 밝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이순간이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른다.
‘나, 느그덜한테 할말이 있어 서울 올라가야겄다.’
어머니를 찾아 뵙지 못해 죄스럽던 차에 상경하겠다며 전화를 주신 것이 며칠 전이다.
궁금하기도 하고 말 못할 고민이 있으신가 싶어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혹시 유언 같은 걸 남기시려는 건 아닐까?
지난해 겨울 나를 불러놓고 한 말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노인 일을 어찌 알것냐? 아무개네 어메가 죽고나서 자슥들이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방바닥에서 백몇십만원이 나왔더란다.”
그러면서 통장이 어디 있으며 당신이 갖고 계신 몇 푼 안 되는 돈을 형제들에게
배분하라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당신을 맞으러 3형제 부부가 우르르 몰려가보니 짐이 용달차 수준이다.
물러터지기 일보직전인 상추, 냉동실에서 꺼낸 물이 줄줄 흐르는 죽순, 양파나부랭이, 마늘..
박스마다 갈매기 날아가는 가는 서툰 글씨로 우리 삼형제 이름을 새겨 놓았다.
무학인 어머니가 손수 글씨를 읽고 쓰기 시작한 것은 50 전후인 것 같다.
편지가 와도 아버님이 읽어주기 전에는 소식을 알 길이 없어 답답한 세월을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직접 참기름을 짜던 젊은 날 글을 모른 어머니는 용케도 참깨 주인을 기억했다.
그건 당신만 아는 표식을 참깨 보퉁이에 기록하셨던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답답했으면 손수 글을 깨우치셨을까?
“어머니! 강화도 바람 쐬고 올까?”
4시간이나 고속버스에 시달리신 당신께 할 소리가 아니건만……
점심을 들며 넌지시 말을 빼자 피곤하실텐데 쾌히 응낙하신다.
싫어도 자식들이 좋다고 하면 당신의 의지를 숨기는 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저려온다.
우리 3형제 부부가 어머님과 함께 드라이브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마치 암탉이 날개 죽지에도 배 밑에도 병아리 품고 모이를 찾아주듯
자식들을 거느리고 여행하는 그 재미에 피곤도 달아난 표정이시다.
강화도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다 슬그머니 일어섰다.
“아가! 왜 밥을 먹다 마냐?”
“낮에 먹은 것이 체했는지 속이 안 좋아서….”
얼버무리며 일어서자 동생들이 어머니 눈치를 살피며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실은 복부통증 때문에 검진을 받다가 뇌동맥에 꽈리가 발견되어 뇌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여 어머니가 수술한 것을 눈치 챌까 봐 자리를 비우고 둑방으로 나왔다.
석양 저편에서 밀려오는 바닷물을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밀려갔던 바닷물이 고향집 찾아오듯 조심조심 밀려오는 갯벌에는 수많은 생명이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은 이렇게 분주하고 찬란 한 것을……
어머니가 분명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끄집어내지 않고 이대로 내려가실지도 모른다.
통증이 우선하여 자리에 돌아가자 어머니께서 드디어 말을 꺼내신다.
순간 긴장한 우리들은 어머니 표정을 살폈다
한참 뜸을 들이시더니 결론을 먼저 꺼내신다.
“다름이 아니고 느그덜한테 상의할려고 그런다.”
당신의 말은 마을회관을 새로 짓는데 기금을 500정도 내고 싶단다.
500만원?
우리들은 순간 잘 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다시 여쭸다.
결코 적지 않은, 아니 엄청 큰 돈인데 왜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나이가 들면 어린애처럼 판단력도 분별력도 떨어진다는데 혹 그런 건 아닐까?
요양원 1년이면 1000만원은 족히 들 텐데 500만원 정도 신축비용을
부담하면 어떻겠느냐고 논리를 들이대며 의사타진을 하신 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종합하면 그 내막은 이렇다.
지금 출입하시는 마을회관은 엄밀히 말해 옆 마을에 소속된 회관이라 객이나 다르없단다.
마을회관은 회원 수에 따라 보조금이나 제반 복지혜택이 주어진단다.
본디 소속 마을회관으로 출입하면 그만이지만 고집하시는 이유는
그 동안 친하게 지내시는 친구분들과 헤어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었다.
신축하는 마을회관이 고향 집과 더 멀어지기에 그곳까지 출입하는 것은
흉잡히는 일이라 떳떳하고 싶다는 속내였다.
아니면 주소지를 신축 마을회관과 동일한 주소로 이전하면 어떻겠냐며 물으신다.
당신이 얼마나 친구들을 놓치기 싫었으면 그런 고민까지 하셨을까?
늙을수록 친구는 돈으로 살 수도 없다.
외로움과 고독을 나눌 자식이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깟 돈은 쌓아 놓으면
무얼 하겠는가?
“어머니 지금 집을 팔고 신축회관 옆으로 이사하면 어때?”
비록 1년을 사시던 6개월을 사시던 당신 맘이 떳떳하고 편하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며 넌지시 물었더니 좋아라 하신다.
그 동안 시골집을 팔자며 얘기를 꺼낼 때마다 꿈쩍도 않았던 당신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을 내 놓으면 값을 후려치기 십상이고 어쩜 팔리지도 않아
폐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아계실 때 처분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우리 편하자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