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어디서 났어? 누가 줬어?”
“몰라! 그게 뭔데?…”
아내는 등산가방을 정리하다가 왠 스카프 한 장을 꺼내 들고 묻는다.
스카프는 초록 빛 톤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이 도안되어 있었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보자기였다.
식사를 하던 딸 애가 스카프를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한다.
“에르메스 스카프야. 굉장히 비싸”
“에르메스? 그래 얼마쯤 나가는데?”
“한 30만원쯤 할 걸?”
“뭐? 뭔데 그렇게 비싸?”
딸애가 스카프를 들고 빠안히 바라보며 놀리듯 말을 잇는다.
“아빠! 이거 어떤 아줌마가 줬어? 갖다 드려!”
‘이상도 하다. 포장도 없이 맨 살을 드러낸 스카프가 내 가방 속에 있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스카프가 왜 내 등산 가방에 들어 앉아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거의 대부분 아내와 등산을 다녔고 몇 번인가 아내와 스케줄이 안 맞아
혼자 산에 올라 간 적은 있지만..
근래에 산악회 모임 뒤풀이 마당에서 경품추첨이 있긴헀다.
하지만 내 평생 손에 두드러기가 생기면 생겼지 경품추첨에 당첨된 적이 없다.
혹시 하산하는 길에 어떤 아줌마가 슬쩍 내 가방에 넣었을까?
가방 지퍼가 열린 채 산을 내려올 일도 없지만 어떤 넋 나간 여자가 저리 비싼 걸 넣을까?
도둑이 제발 저린다더니 그런 생각도 든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신품이 틀림없다..
난 문외한이라 명품 이름도 잘 모르지만 Hermes를 왜 에르메스라고 발음하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읽은 그리스 신화를 더듬어보니 날개 달린 챙 있는 모자를 멋드러지게 쓴 청년이
날개 달린 샌들을 신고 있는 그림이 떠오른다.
그는 제우스와 마이아 사이에서 태어나 거북등으로 비파도 만들고
죽은 자를 저승으로 안내하기도하며 뱀 문양의 지팡이를 들고 상업을 주관하기도 한
부와 행운의 신이라고 한다.
하여튼 신이 어떻든 간에 그 스카프가 그렇게 비싼 거라는데 왜 내 가방에
터억하니 들어와 앉아 나를 곤욕스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악회 총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그 스카프를 내게 준일이 있느냐고……
“당연히 드렸죠! 참석자 모두에게 기념으로!”
난 키득키득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 많은 참석자에게 스카프를 선물했다면 혹시 짝퉁은 아닐까?
난 원래 선물을 받으면 상대방 앞에서 포장을 뜯어 선물에 대한 설명도 들을 겸
감사의 표를 나타내곤 한다.
아마 그날도 그랬으리라고 짐작은 가는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기억이 나질 않을 만큼 막걸리에 취한 것도 아닌데….
아마 그 스카프를 추석날 굴비선물 포장에 쓰는 보자기 정도로 생각한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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