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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어머니를 택배로 부쳤다.

명절이 되면 터미널은 귀성객과 귀경객으로 붐빈다.

설날을 맞아 역귀성하시는 어머니를 마중하러 터미널에 나갔다.

도착 홈에는 마중 나온 아들들이 미어켓 두리번 거리듯 고개를 빼고 서있는가 하면

남쪽에서 올라온 버스에서 내린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도

아들 손주녀석을 발견하고는 함박 웃음을 짓는다.

 

여그가 도착 홈 맞지라우?

의자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는 나에게 옆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묻는다.

할머니! 누굴 기다리세요?

당신은 영광에서 올라왔는데 아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계신단다.

아들은 꼼짝 말고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단다.

할머니는 연신 목에 건 휴대폰을 열어보며 두리번 두리번 초조해 하신다.

북적대는 터미널은 벌써부터 명절 분위기로 한껏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부모님들이 상경하는 풍경이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제사를 서울로 모시게 되어 어머니가 상경하게 되었다.

결국 서울에 있는 우리 형제들이 편하자고 만든 이기적인 논리다.

비록 당신이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당신 한 몸 희생하시겠다는 가이 없는

어머님의 사랑을 싸구려 물건 사듯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설날은 산소에 들러 솔가지를 꺾어 놓고 세배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올 설에도 아버님 산소에는 찬바람만 스쳐갈 것이다.

설날 솔가지가 없는 산소를 바라볼 때마다 후손들이 찾아와 보지도 않았다고 흉보던 내가

남들의 흉을 받게 된 것이다.

 

아파트에서 맞는 설!

설날이 되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종일 TV에 눈을 박고 오후 되면 앉아있는 것도

따분해 서울 근교를 한 바퀴 돌거나 목욕탕 가는 것이 고작이다.

설날이 의미 없이 밋밋하게 지나가고 동생들도 애들도 각자 떠나고 나면

어머니와 우리 내외는 방바닥에서 뒹굴거나 아파트 창 밖을 멍하게 바라보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설을 쇠고 나면 시골집에 떡 붙여 놓은 듯 훌쩍 내려가시곤 한다.

사실 길들여진 일상에 어머니가 끼어들고 나면 리듬이 깨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어머니가 훌쩍 내려가시면 시원섭섭 홀가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발랑 눕고도 싶고 친구 불러 내어 당구치러 가고도 싶지만 그리 못하니 답답한 것이다.

나를 낳아주시고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께 이 짧은 순간 재롱잔치를 해도 부족하련만

왜이리 방정맞게도 불손한 생각이 드는 걸까?

 

어머니가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날이다.

아홉 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차를 몰고 터미널로 향했다.

얼른 배웅하고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고 보니 마음이 바쁘다.

역시 또 서운한 느낌과 홀가분한 느낌이 겹쳐 지나간다.

팔순이 훌쩍 넘으신 당신이 내년 설에도 이렇게 건강하게 오실 수 있을 거라는

기약이 없건마는 마치 천년 만년 사실 것처럼 불손한 생각이 어른거리다니…….

 

출발 홈에는 귀향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배웅 나온 아들들이 멀뚱하게 앉아있다.

모두들 마치 다투기라도 한 듯 말수가 없고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있다.

설 전날 상경하던 도착 홈의 들뜬 풍경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따금 개찰구 너머로 버스가 드나드는 것을 힘없이 바라보고 앉아있다.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할머니와 배웅 나온 자식들은 서로 손을 흔들지만

자식은 연거푸 시계를 들여다 본다.

부모를 태워 보내고 빨리 출근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이리라.

아가! 항상 조심하거라!

당신 앞에 어린애 일 수 밖에 없는 내게 차에 오르며 당부를 하신다.

뭘 조심하라는 것인지 뻔한 얘기를 되새기며 차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서있기가

멋 적어 하릴없이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며 어머니의 눈을 피했다.

 

분명 눈시울이 붉어지실 게 뻔하기 때문이다.

1 2분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창 안에서 어머니는 연신 손을 흔들고 계신다.

아마 차에 오른 이후부터 흔들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눈길조차 피해 휴대폰에 눈을 박고 있는 나는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가?

드디어 버스가 엉덩이를 보이며 터미널을 빠져 나갔다.

홀가분하다.

어머니를 고향집에 택배로 부치고 돌아선 느낌이다.

 

설날 잔치는 끝났다.

마치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환히 켜질 때처럼 지난 3일이 스쳐간다.

당신의 품에서 떠난 후 내가 다져 놓은 내 일상의 틈으로 들어온 당신을

불청객처럼 짐스러워하다니……

어머니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이 순간 나는 빈 차를 몰고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다.

옆자리에는 어머니의 체취와 온기가 남아있건만 이제 어머니는 안 계신다.

힘들게 4시간을 남쪽으로 내려가고 계시는 것이다.

 

엄니! 순간이나마 짐스럽게 생각해 미안해

엄니! 조심해 내려가. 내년에는 딴 생각 안 할께.

혼자 중얼거리며 차를 모는 눈가가 흐릿해져 온다.

2013.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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