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항상 자식을 금덩어리처럼 가까이에 놓고 보기를 원한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광주를 떠날 날이 다가왔다.
주말 부부가 힘들다지만 난 자유인처럼 살아오며 홀로 여유를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아내가 들으면 떨어져 사는 게 그렇게 좋더냐고 퉁맞을 소리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비록 예견된 이별일지라도 이별은 항상 가슴 한 구석에 쿵하고
내려 찧는 돌덩이다.
더구나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가슴은 쇳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머물렀던 시간이 길던 짧던 떠난다는 건 추억이 될지언정
가슴 한 구석이 휑하기 마련이다.
3년 전 그 봄!
극락강 둑방 길을 지나 첫 출근하던 날!
나는 비로소 자유인이 된 듯 가슴이 부풀었다.
고향집 노모는 장남이 근동에서 근무하기에 든든하다며 좋아하셨다.
하지만 주말이면 처자식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기에 바쁜 나는
항상 가슴이 무거웠다.
내가 처자식을 사랑한 만큼 엄니를 사랑했을까?
엄니를 나 몰라라 팽개치듯 휑하니 서울로 올라가던 주말
당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제 주말은 고사하고 명절 때나 한두 번 얼굴을 내밀 작별을 앞두고
서울로 올라가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내게 엄니는 누구였고 나는 엄니에게 누구였던가?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은 핏줄을 엮은 연이건만 난 직장을 핑계로
떠나려는 것이다.
“어무니! 나 발령 날 거 같아”
“상무지구에다 집 사서 살면 좋겠어야.”
일흔 여덟 해째 생신을 사택에서 맞던 날 장남 며느리에게 한 말이
어찌 빈 소리가 아님을 내 모르랴.
비록 시골집은 아니라도 장남 내외가 가까이 있으니 당신은 든든하였으리라.
효도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건만 이것만은 내 못하겠으니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어무니! 나 발령 났어”
진즉부터 당신의 충격을 덜기 위해 틈만 나면 발령 얘기를 꺼냈으니
이제는 당신도 준비가 되어있으리라 싶지만 그 말을 꺼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짐을 싸러 내려온 아내와 나는 엄니를 모시고 작별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랬자 드라이브가 고작이건만 옆에 앉아 낯선 동네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당신에게 작별의 선물치고는
너무나 야박하다.
강진 남미륵사를 돌아 정남진 코스를 잡고 여행을 떠났다.
그래도 설날이 멀지 않아 곧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역마살 낀 당신이 자식과 함께 해 좋은 건지 서운한 기색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아따. 진짜 색시하고 잘 빠졌구만”
남미륵사의 청동불상 옆에 선 날씬한 여 보살 조각상을 보며 말을 내뱉자
아내는 경건한 경내에서 응큼한 생각을 한다며 눈을 흘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조각상은 금방이라도 춤을 추며 바람을 피울 듯
치맛자락을 뒤로 날린 채 입을 벌린 용에게 물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렇듯 엉뚱한 생각을 하다말고 뒤돌아보니 엄니는 뒤따라오지 않고
멀리서 합장을 하고 있다.
다리 아프다며 따라오기를 포기한 당신은 무엇을 간구하고 있을까?
혹여 낼이면 서울로 떠나갈 자식의 건강을 빌고 있을까?
문득 신혼 때의 작별이 떠오른다.
“장남 며느리는 시댁 장맛을 알아야 돼”
내가 먼저 이상한 법을 만들어 신부에게 고하고 일 년을 떨어져 살았다.
신혼 초에 시집에 남겨놓고 직장을 따라 여수로 훌쩍 내려 가버린
당시의 나는 용기였을까 아니면 오만이었을까?
그 때 얘기를 꺼내면 지금도 야속하다며 추억처럼 얘기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는 하다.
그러고 보면 난 자유인이 되기를 그 때부터 갈망한 것이 아니었을까?
계절이 네 번 바뀌고 나니 어느덧 만삭이 된 아내가 아들을 낳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벙긋벙긋 웃는 손자 보는 재미에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일 년이 지나고 작별하던 날!
첫 새벽에 고향집 능주에 화물차가 부릉대고 서서 재촉을 한다.
마치 경매 물건 싣듯 농이 실리고 이불 짐이 실리고 혼수로 장만해온
숟가락이 실리니 어머닌들 아버진들 속이 좋을 리 있었을까?
이삿짐 구경하느라 큰일이나 난 듯 동네 어른들이 기웃거린다.
동생들의 얼굴은 부아가 난 모습이 역력하고 손자를 업고 서있는
엄니 얼굴 또한 금방이라도 짐을 도로 풀어 놓으라고 소리 지를 것만 같다.
“짐 상하지 않게 조심해 실어.”
평소에 말없는 아버지는 서운한 표정을 감추느라 헛 담배만 빨며
애꿎은 인부들만 나무란다.
며느리 미워하는 시아버지 없다더니 아버지 또한 예외가 아니었던 성싶다.
빨래를 이고 냇가로 향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남몰래 자전거로 빨래를
실어다 주고는 빨래가 끝날 때까지 둑방에 앉아계셨다는 당신이
어찌 속이 좋겠는가?
오리나 떨어진 냇가에 장작을 피우고 빨래를 하던 터라
당신이 보기에도 안쓰러웠으리라.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랑이라던데 힘없이 담배만 빨아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니 우리는 죄인이 된 듯싶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아내가 묵묵히 부엌살림을 챙긴다.
손자를 업고 있는 엄니의 표정은 화가나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듯
일그러진 표정이다.
시누이들 또한 부르터진 얼굴로 엄니 등에 업힌 조카를 애써 못 본 척
표정을 감추는 모습에 정을 Ep려는 것임을 왜 모르랴.
직장이고 나발이고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앞섰다.
“이제 갑시다.”
저승사자가 이제 때가 되었으니 어서 가자고 재촉하듯 얄밉기 짝이 없다.
고무 밧줄로 칭칭 동여맨 이삿짐이 1월의 찬바람 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시동을 거는 운전사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렁 가그라.”
아버지의 말에 그제야 아내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아들놈을 받아 안는다.
어머니는 등에 따뜻하게 붙어있던 손자를 빼앗기기 싫은 듯 마지못해
아내에게 넘긴다.
차마 받을 수 없는 큰돈을 받은 듯 아내가 애를 받아들자 이내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며 눈물을 말리고 있었다.
“동남이 시키 잘 가. 아프지 말고”
여동생이 귀엽다며 엉덩이를 꼬집자 아들이 아앙 울고 만다.
정이란 무엇일까?
짧은 일 년 동안 동네 어른들과 맺은 새댁의 정이 그리도 컷더란 말인가?
운전사가 시동을 걸고 우리가 차에 오르자 기어이 소리 내어 울고 만다.
구경 나왔던 동네 어른들이 눈물을 찍어내기 시작한다.
이제 나는 또다시 엄니에게 작별여행을 강요하고 있으니
이런 불효가 또 어디 있는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당신에게 어떻게 해야 잘 해 드릴건가?
‘엄니 건강해야되. 2주마다 한 번씩 내려오니까 걱정 말고......’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내 말을 당신은 알아들었으리라.
작별은 언제나 서러운 것......
0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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