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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공자 가라사대!

 

‘공자왈 맹자왈~ ’

조선시대는 글을 읽는 사람이 세상을 좌지우지했다.

士農工商이라는 신분계급은 양반에게 엄청난 권력을 부여했고

쇠를 다루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은 천민으로 무시당했다.


양반들이 유학이나 주자학에 빠져 수염을 다듬고 있을 때

이를 보다 못한 일부학자들이 실용주의 학문인 실학을 들고 나왔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다산 정약용이나 정약정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유배지에서 생을 마치고 말았다.


기득권 세력인 양반들의 눈에는 실학이 눈엣가시였다.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빼앗아가려는 습격자로 비춰진 것이다.

양반네들이 생활에 별 이득이 되지 않는 유학에 심취해 있을 때

서양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서구 열강들은 잘 발달된 공업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동력을 확보해 해외 식민지 개척에서 많은 부와 이득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제 시대가 바뀌면서 인문학 보다는 돈이 되는 학문이

귀염을 받기에 이르렀다.

인문학은 시대적인 흐름에 비춰볼 때 귀염 받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참여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공계 위기라며 부산을 떨었다.

그 결과 미흡하지만 공직자 50%를 이공계 진출토록 하는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 목소리들은 한 여름 밤의 꿈이 되어가고 이젠

그 자리에 인문학이 들어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인문학은 사람을 겉 포장하기 위한 학문이다.

유식의 척도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인문학이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인문학은 홀대 받아도 괜찮고 자연과학이

우대를 받아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취지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겉포장보다는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그런 학문이 중요도가 높다는

뜻에서 하는 얘기다.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1등만이 통하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말한 1등은 인문학의 범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 좋기는 하다.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도 돈을 벌어주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를

배불리지는 못한다.


우리가 왜 FTA협상을 놓고 찬성과 반대로 의견이 나누어지는가?

어떤 카드를 버리고 어떤 카드를 손에 쥐는 것이 유리할지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이유가 뭔가?

그것은 인문학과 관련이 적은 (士)農工商의 영역에서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소위 士農工商의 士가 빠진 것이다.

인문학 위기라는 목소리를 잠시 접어두면 어떨까?  06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