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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금줄세대가 부모에게 용돈드리는 마지막 세대인가?

 

“우등 타고 댕기면 누가 알아주간디요?”

“하하. 그래 맞어. 누가 알아주간디?”

구수한 사투리에 맞장구를 치고 나니 빙긋이 웃음이 나온다.

주말마다 고속버스를 이용하기 시작한지 6개월이 넘었다.

우등고속과 일반고속의 요금 차이가 7,000원을 넘는지라 일반고속을

 이용하곤 한다.

우등고속 두 번이면 일반고속을 세 번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아. 그래도 체면이 있제 우등고속 타고 가세요.”

“머여 시방. 체면이 밥 먹여줘? 시간도 똑같이 걸리는데...”

난 그 때마다 정색을 하고 대꾸를 한다.

일반고속은 우등보다야 못하지만 비행기 좌석에 비하면 양반이다.

우등은 엉덩이가 우리 두 배쯤 되는 서양인에게나 어울린다.


지난 일요일 고속버스에 오르자 내 좌석에는 다른 손님이 앉아있었다.

가끔 멀미 핑계로 할머니들이 좌석번호를 무시한 적은 있었다.

선반의 좌석번호를 바라보며 머뭇거리자 자기와 바꿔 앉자며 눈짓을 한다.

그 사람은 3번 좌석이고 나는 2번 좌석이니 개진도진인데 바꾸자는

이유를 모르겠다.

뜨악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자 비밀얘기라도 하듯 노인 옆이라 싫어 그런단다.

운전석 바로 뒤 4번 좌석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책을 읽고 있었다.


아니 저분이 뭐가 어째서 같이 앉아가기 싫다는 말인가?

“그럼 1번에 앉으세요. 1번 손님과 맞바꾸면 되겠네요.”

소퉁이가 괘씸하여 일부러 1번 좌석에 앉으라고 역 제의를 했으나

창측이라 싫단다.

‘이런 몰상식한 사람을 봤나‘ 

얻어먹는 주제에 찬밥 더운밥 가린다더니 하는 짓이 여간 밉지가 않다.


노인을 싫어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혹시 내가 오기 전 저 노인과 말다툼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똥이라도 싸 담아 냄새가 나기라도 하는 것일까?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멸시를 당해야 하는가?


할아버지는 이쪽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돋보기

너머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있었다.

문득 금줄세대인 우리가 부모에게 용돈 드리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세대조차 못된 생각을 갖고 있으니 금줄이 뭔지 모르고 태어난

세대들은 노인들을 얼마나 거추장스런 짐으로 여길까?


마음을 다독이고 책을 펴들자 내 책으로 고개를 처박듯 빤히 들여다본다.

재수 없는 놈은 비행기룰 타도 뱀에 물린다더니....

내가 왜 이렇게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가?

하는 짓거리가 미워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손님들이 차에 오르고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려 실눈을

뜨니 3번 좌석에 40대 후반 아주머니가 거리낌 없이 자리에 앉는다.

‘이상하다. 틀림없이 밥맛의 자리일 텐데... 내가 차를 잘못 탔나?’


승차권을 꺼내들고 들여다보자 옆자리의 밥맛도 승차권을 꺼내본다.

하는 짓도 나만 따라하는 꼬락서니로 보니 좀 모자란 듯싶기도 하다.

밥맛의 부인이 들으면 멀쩡한 사람 미친놈 취급한다고

길길이 날뛰겠지만.....

분명한건 내가 잘 못 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머니나 밥맛 중 누군가 좌석번호를 잘못 알았을 것이다.


밥맛의 차표를 훔쳐보니 좌석번호 란에 ‘9’가 찍혀있다.

“아저씨는 9번이구만~.”

“아니요. 3번이요”

‘승차홈‘란에 찍힌 3이라는 숫자를 좌석번호로 잘못 알고 우기기 시작한다.

“아따 ‘3’자는 내 표에도 찍혀있지 않소. 여그”

일부러 ‘승차홈’을 설명해주지 않고 표를 보여주자 머쓱해진 밥맛이

갸우뚱한다.


잠시 후 ‘입다문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힘겹게 올라와 내 옆에 앉으신다.

창 밖에서는 손자며느리인 듯한 30대 아줌마가 아기를 보듬고

손을 흔들고 있다.

엄마를 따라 손을 흔드는 아기의 해맑은 미소 속에서 행복이라는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그래도 우리가 마지막 세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용돈 드리는....

0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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