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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동유럽-끝) 폴랜드/체코

아침부터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둑한 창문으로 빗금 긋는 빗방울은 여행자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창부같이 변덕을 부리는 날씨 때문에 유럽인들이 전쟁을 좋아한 것은 아닐까?

 

‘서독’과 ‘독일’이라는 단어는 이상하게 평화와 전쟁이라는 정 반대 이미지로 다가온다.

6.25가 끝나고 보릿고개가 한창이던 가난한 시절에 사촌이 서독광부로 떠났다.

사촌이 떠나고 우리 마을에서는 서독에 대해 고마운 이웃이고 평화라는 이미지로 다가왔다.

하지만 독일이라는 단어는 나찌 탓이겠지만 아직도 공포감과 증오심을 가져온다.

1. 2차 대전의 중심에 독일이 있었고 영화를 통해 나찌의 참상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들어섰다.

‘일하면 자유를 얻으리라‘

영문을 모르는 유태인들은 게토에서 이곳 아우슈비츠로 옮겨졌고 개스실에서 몸부림치며

벽을 긁다가 죽어갔다.

시체는 처리공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화장을 하여 버렸다.

유태인을 사냥하여 이곳으로 끌고 오기 위해 철도를 놓다니......

철도 종착역인 아우슈비츠를 뒤로하고 체코로 향했다.

수데티산맥을 넘어서자 빗방울은 갑자기 눈으로 바뀌었다.

차창 밖 가문비 나뭇가지가 눈을 못 이겨 축 늘어진다면.....

그러면 어디선가 눈썰매를 타고 산타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지루한 버스 안에서 영화를 보다 말다 가이드의 안내에 눈을 뜨니 프라하다.

중세 모습 그대로인 프라하 역이 눈에 들어오고 로마네스코 양식의 건물들이 늘어서있다.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한 건축물과 성당으로 인해 내 머릿속은 카오스상태가 되고 말았다.

카를교에서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성 얀 네포무츠키 상에서 5개의 별이 있는

십자가 조각상을 만져보고 어둑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구 시청사 천문시계에서 12사도가 나오는 시간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이튿날 체스키그롬노프라는 중세도시 원형이 보존된 시골 도시로 향했다.

물과 산과 건물이 잘 어울리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이다.

크롬노프에 들어서자 마치 어릴 적 이발소에 걸린 그림이 떠올랐다.

안내도를 보니 S자로 굽은 물줄기가 안동 하회마을을 닮았다.

입구 도랑에는 아직 추운날씨인데도 수많은 제비들이 날고 있었다.

녀석들은 왜 우리나라에는 오지 않고 추운 이곳에 날아와 놀고 있을까?

놀부가 다리를 분질러 놓았던 기억하기 싫은 유전인자를 갖고 있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삼각형 지붕이고 우리는 진흙을 구운 기와집이다.

우리의 주거 구조가 예술적으로나 자연친화적으로 봐서는 한수 위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흙벽을 바르고 창호지 문을 통해 소통을 전제로 발달된 주거문화였으니

개방과 공유와 소통을 이미 실현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예술을 따져 봐도 우리가 서양예술보다 결코 뒤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음악, 미술, 철학까지 서양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

마치 오페라나 뮤지컬을 즐기는 사람을 문화적인 우월자로 인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오페라나 뮤지컬이 있다면 우리에겐 마당극과 창이 있지 않은가?

또한 각설이 타령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내가 문화부 공무원이나 된 듯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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