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에서 오스트리아로 가는 길은 대부분 구릉이다.
구릉에는 갓 싹이 돋기 시작한 밀밭과 노란 유채꽃이 궁합을 이루고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배경을 떠올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MS윈도우 초기화면과 닮았다.
오스트리아는 내게 특별한 기억이 없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 사람이라는 정도뿐이고
그것도 모차르트인지 베토벤인지 분명하지 않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승만 대통령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고국이란다.
유채 밭은 바이오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재배한단다.
지금 지구상 곳곳에는 기아에 허덕이고 우리도 무상급식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식량자원으로 에너지를 만들다니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오스트리아로 들어서는 국경에는 하다못해 제복을 입은 사람이 있어야 할텐데
리무진 기사가 허름한 집에 들러 서류에 사인(?)을 받고서는 또 출발한다.
가이드가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를 틀어준다.
그러고 보니 그 영화 배경이 오스트리아란다.
여행을 하면서 영화를 보다니......
허리를 잔뜩 졸라맨 여주인공과 초원에서 부르던 도래미송이 떠오른다.
(미라벨궁전-사운드오브뮤직 촬영지)
금단현장이 나타나며 온몸이 나른하고 짜증 나기 시작했다.
6시간을 이동해야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접속이 되지 않는다.
인천공항에서 신청한 2만원어치 데이터 로밍 본전을 뽑고자 함이었다.
외교부에서 위급상황시 영사 콜센터로 전화하라는 메시지와
문자 로밍은 건당 300원이라는 안내문자가 날아왔다.
또한 ‘[SKT] 주의! DATA 미사용시에도 어플등의 자동업데이트로 인해 DATA 로밍요금 발생가능’
이라는 문자가 친절(?)하게도 날아왔다.
자다 말다, 영화를 보다말다 눈을 뜨고 폰을 열어 보니 느닷없이 데이터 로밍요금이
10만원이 넘어 4월 30일까지 로밍을 차단한단다.
난 데이터 로밍이라고 해봤자 국내 애들에게 문자 두 번 날린 것 밖에 없는데
아닌 밤에 홍두깨가 아닌가?
알고 보니 스마트폰 어플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이 백그라운드에서 돌면서 그리된 모양이다.
자칭 타칭 IT분야 전문가라는 나는 여지없이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데이터라는 개념이 무엇인가? 음성이 아닌 문자메세지는 데이터가 아닌가?
나는 음성 통화보다 문자 메시지가 저렴하여 문자메세지를 이용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통신사에서는 문자 메시지도 80자가 넘는 경우를 데이터로 취급하고 있었다.
금단현상에 사기당한 느낌이 들어 내 기분은 폭발직전인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훌훌 털고 잊어버리자. 까짓 10만원 잃었다고 생각하자’
하지만 억울한 기분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짤쯔캄머굿이라는 오스트리아 호반 도시로 향했다.
이미 내 기분은 상해있는 터라 그동안 차창 밖에 펼쳐진 붉은색 삼각형 지붕들과
초원이 별로 감흥을 주지 못했다.
속이 뒤틀어져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니 한없이 삐딱하다.
(짜쯔캄머굿)
짤쯔부르크로 이동한 우리는 모차르트(볼프강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생가를 찾아갔다.
생가를 떠올리면 시골에 시냇물이 흐르고 아담한 집을 연상하였는데
1750년대 모차르트가 아파트에서 태어났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나라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게 만든 시기였는데
한옥이 우리나라 가옥인데 반해 마치 오늘날 아파트와 진배없는 3층에서 살았단다.
(모차르트 생가)
짤쯔부르크의 미라벨 정원은 사운드오브뮤직을 촬영한 곳이란다.
정원의 나무들은 해병대 머리 깎듯 네모로 전지를 해놓아 작위적이었다.
유럽은 어디를 가나 나무를 자연 그대로 놔두지 않고 인위적으로 다듬는다.
나무들은 몸부림치며 안으로 안으로만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말을 타고 산을 보듯 사진 찍고 부랴 부랴 멜크수도원으로 이동했다.
성 베네딕도 수사가 이곳에서 수도자의 길을 걷고 성인 반열에 올랐단다.
바로크 양식인 수도원과 비교하여 공부하라는 듯 멀리 고딕양식 첨탑이 서있었다.
사진 박3-529 S9717
(멜크수도원-외부 소통)
(멜크 수도원)
외부세계와 단절된 그 공간에서 중세 수도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굳게 닫힌 철문 옆에는 간신히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려있을 뿐
그 옛날 수도자들의 극기가 서려있는 듯싶다.
이튿날 비엔나로 이동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별장 쉔부른 궁전은 권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쉔부른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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