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면 초여름인데도 한기가 들어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난방이 안 된 탓에 눅눅한 파커를 입고 잠을 잤으나 추워 벌벌 떨어야 했다.
새벽 3시부터 잠이 깨어 뒤척거리다 일출을 보러 나갔다.
춥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불을 꺼내 잠을 잤단다.
TV 밑 장 속에 이불이 있었다는데 모르면 프론트에 얘기하면 될 것을.....
희끄므레하게 해돋이를 준비하는 먼 산위에는 운해가 훼방을 놓고 있었다.
마치 신년 연하장을 연상시키듯 바알간 해가 힘없이 나타난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황봉을 바라보며 맞았던 그 찬란한 해돋이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굳이 이곳 산에서 숙박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서둘러 아침을 먹고 신백아령 케이블카역으로 향했다.
일행은 시신봉과 석순봉을 돌아오는 2Km코스를 택했지만 난 지름길을 택했다.
어머니는 어제 오던 똑같은 길이건만 오늘은 무척 힘들어하신다.
“우리 어렸을 때는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그랬어. 응?”
가다 말다 계단에 걸터앉아 시답잖은 얘기를 꺼내 어머니를 위로하려 들지만
그렇다고 가쁜 숨이 젊은이처럼 되돌아올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갈 때 맨 먼저 숨이 멎는다는데
호흡이 가쁘니 그만큼 기력이 쇠한 것이 아닌가?
호흡을 고르며 계단 위를 올려보니 뚱뚱보 왕서방이 가마에 앉아간다.
체구가 뚱보의 절반도 못 되는 가마꾼이 낑낑대며 10여 계단 가다가는 쉬기를 반복한다.
미련한 곰탱이 같은 녀석이 산에 와서 부채질하며 가마에 앉아가다니 상판때기나
똑똑히 봐두려고 눈을 마주쳤건만 왕방울 눈을 뒤룩 뒤룩 굴리며 태연자약이다.
시골집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일부러 운동하시도록 모른 체 해왔지만
어머니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니 시기심이 나고 그 하찮은 가마도 못 태워드린 것이
마음에 걸린다.
여행에서 감초처럼 붙어 다니는 쇼핑은 여행의 묘미를 반감시킨다.
여행 끝나고 보면 후회할 물건들도 충동구매와 경쟁구매로 덩달아 구입하게 된다.
그 시간에 다른 곳 한 곳을 더 구경할 수 있도록 실속 있는 일정을 짜면 좋으련만.....
한약방이라는 간판도 없는 창고형 건물로 들어서자 동포 의사라는 사람이
그럴 듯하게 흰 가운을 걸치고는 건강식품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한다.
구운 마늘이 좋고 와인이 몸에 좋다는 둥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을 강의랍시고
하고나서는 뒤이어 중국인 한의사가 들어와 무료로 진맥을 한단다.
간호사가 통역을 하며 구매 욕구를 부채질하는가하면 목을 안마해주더니
3천원을 받아간다.
부아가 치민 나는 그들의 장삿속을 피해 딴전을 피우며 벽으로 눈을 돌렸다.
벽에는 중국을 중심에 놓은 세계지도가 걸려있었다.
그들 기준으로 세계지도를 보니 우리나라는 동북쪽 변방이다.
그들의 소위 동북공정이라는 역사 왜곡이 위치상으로 동북지역이기 때문이렷다.
그런데 그 지도에는 우리나라 동해를 ‘日本海’라고 버젓이 표기해 놓고 있었다.
동북공정만으로도 하는 짓거리가 괘씸하기 짝이 없는데 번연히 지도가 잘못되었음을
알고있을 텐데도 동포라는 작자들이 물건팔기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니 말리는 시엄씨보다
더 밉다.
항주로 향했다.
항주는 한자가 의미하듯 나무쪽배로 고기를 잡던 사람이 많음에 유래한단다.
항주에는 신라 성덕왕의 왕자 김교각이 삽살개를 데리고 머나먼 이곳에서 고행을 하고
지장보살로 환생했다고 하니 신라와 당나라의 교류는 인정할만하다.
하지만 그 옛날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말이 통일이지 당나라와
주종관계로, 자력통일이 아닌 외세에 의한 통일은 곧 굴욕이라는 교훈을 떠올리게 한다.
이른 저녁 송성가무쇼를 관람하는 스케줄에 빨려 들어갔다.
우리의 워커힐 쇼와 진배없으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규모나 스토리에 짜임새가 있었다.
장구치고 꽹메기 두들기고, 허벅지 드러내놓고 번쩍번쩍 다리 들어 올리는 것으로
관광객을 맞이하던 시대는 지났다.
송성 가무쇼는 그들만의 스토리를 가미하여 관광객의 시선을 붙들기에 충분했다.
총 5부로 나눠진 가무쇼의 첫 이야기는 원시시대의 인간이 불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렸다.
무대에 오른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는 그들이 얼마나 관광산업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이어지는 주제는 송나라 시대의 궁중연회를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궁중연회에서는 아리랑을 연출하여 한국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돈이 된다면 뭔들 못하겠느냐만 대부분 한국 관광객이니 그도 그럴 수 밖에......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일본인 관광객이 주름잡고 섹스관광 등으로 인한 물의를 일으켰는데
그 많던 일본 관광객은 다 어디로 간 걸까?
3부는 전쟁을 주제로 한 남송 때의 영웅 악비가 금나라침략에 맞서 싸우는 장면을
사실감 있게 연출하여 관중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우리도 이순신장군이 왜적을 격파하는 학익진 장면을 연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4부는 서호를 주제로 한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왜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돈 주고 보아야 하는가?
마무리는 녹차 밭을 배경으로 녹차 수확을 주제로 은연중에 그곳 녹차가
유명하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보성, 하동 녹차밭이 얼마나 유명하고 아담한데 우리는 그걸 세계화시키지 못할까?
결국 이튿날 녹차가공 공장으로 쇼핑을 간 우리는 지갑을 열고 말았다.
새삼 콘텐츠의 중요성을 떠올리며 우리의 문화관광산업을 되돌아보았다.
3D영화 ‘아바타’의 경우 강남의 아파트 3,400여채와 맞먹는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단다.
굳이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해보면 아시아나 항공 1년 매출과 맞먹고 아반떼 16만대를
판매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문화콘텐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민 주도의 관광산업에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면 어떨까?
이순신장군의 스토리, 단군신화 등을 무대에 올려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고 외국인을
끌어들여 지갑을 열게 만들고......
금강산도 식후경인가?
여행은 이상하게도 식탐을 하게 만든다.
매슬로우가 정립하지 않았더라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먹는 것이다.
저녁은 동파육과 거지닭 요리가 곁들인 현지식이 나왔다.
동파육은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즐겨 먹었던 음식이란다.
간장소스에 쪄 낸 돼지고기로 마치 두부모 썰 듯 장방형으로, 비계가 살코기와
헤어지기 싫어 함께 붙어있는 큼지막한 덩어리지만 맛은 괜찮았다.
소동파는 북송시대의 시인으로 양자강에 배를 띄워 적벽대전의 두 영웅인
조조와 주유를 생각하며 인생이 무상함을 노래했단다.
동파는 떠났어도 그의 글 적벽부가 남아있고 사람들이 동파육을 즐겨 먹으니
유명해지고 볼일이다.
거지닭은 거지들이 닭을 훔쳐 진흙으로 감싼 후 땅속에 묻고 모닥불을 피운 후
꺼내먹었는데 요즘으로 보면 오리 진흙구이의 원조가 아닌가 싶다.
이거 저것 그런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왔건만 어머니에게 그림의 떡이다.
휴양지가 아닌 등산관광지를 팔순 기념 여행코스로 선택한 아둔함이 짜장 마음에 걸린다.
배가 불러 좋은 저녁 선선한 밤공기가 남국의 정취를 몰고 온다.
위도상으로 북위 30도인 항주는 비록 해거름 녘에 바나나와 야자수 나무가
검은 실루엣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후끈한 열기가 남국의 서정적인 분위기로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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