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일주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살기가 있고 게다가 설사를 하고 말았다.
몸살기운은 아마 어제 낙타를 타면서 근육이 잔뜩 긴장한 탓이리라.
그런데다가 길거리에서 사먹은 아이스케키 때문에 배탈이 나고만 모양이다.
만용을 부리다가 결국 대장균 100만 마리도 더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여행용 가방 속에 넣은 지사제는 델리에 놓고 왔으니 큰 탈이다.
일행이 가져온 정로환을 먹었으나 계속 배가 아프고 화장실이 친구하잔다.
마른설사라 다행이지만 언제 갑자기 조절이 안 되고 괄약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나저나 무엇보다 걱정은 몸살기가 있어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그놈의 낙타를 탄다고 이 나이에 철딱서니 없이 굴었으니 벌을 받아도 싸다.
이러다 정말 메순이 똥구멍 되는 건 아닐까?
문득 10여년 전에 키웠던 메순이가 떠오른다.
메순이라는 이름은 우리 가족들이 붙인 병아리의 이름이다.
어느 날 성당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장통 입구에서 가무잡잡한
어린 새를 팔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이게 무슨 새예요?”
“메추리요. 메추리”
난 메추리가 알을 낳는 상상을 하며 꽤 자란 메추리를 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메추리는 애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한 가족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먹성도 좋아 아무거나 잘 먹어대고 몸집도 부쩍부쩍 커갔다.
그런데 한 가지 흠이라면 녀석이 걷다가 아무데나 똥을 칙칙 갈기는 것이다.
애들은 묽은 똥을 칙칙 갈기는 메추리를 보고 메순이 똥구멍이라며 놀려 댔다.
지금도 설사병이 나면 메순이 똥구멍 열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는데
우리 가족만의 은어인 셈이다.
그나저나 아무데나 시도 때도 없이 흘리고 다니는 메순이 똥구멍 때문에
아내는 화장지를 들고 쫒아 다니는 형국이 되고 말았으니 메추리 알이고 나발이고
얼른 팔아버리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 달이 지나고 제법 자랐는데도 발가락은 검은 색인데
아무리 봐도 메추리는 아닌성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역시나다.
알고 보니 오골계였던 것이다.
다시 5시간을 걸려 델리 공항으로 이동할 일이 까마득한데 내가 지금
그 메순이 꼴이 되면 큰일이다.
하늘에서는 불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난 이런 불볕을 쬘 때마다 중학교 미술 책에서 본 유럽의 태양을 떠올리곤 한다.
노란 색과 붉은 색을 섞어 나선형으로 태양을 표현한 유화를 볼 때 마다
내가 숨이 헉헉 막히곤 했던 것이다.
일주일의 여정 동안 난 무엇을 얻었고 회사를 위해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이번 출장동안에 만난 많은 사람들은 나와 어떤 인연으로 끈이 엮어질까?
인도를 떠올리면 막연하게 갠지스강과 마하트마 간디가 어른거렸는데
간디는 내 기억 속에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관광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타지마할이나 유명 사찰을 보지 못한 탓이겠지만
더웠던 기억과 휴식 공간이 없어 사원이나 공원에서 배회하는 인도인들의
고달픈 삶만이 떠오른다.
다행이 계속 배는 아팠지만 메순이 똥구멍은 되지 않았다.
하여튼 델리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공항은 항상 고속도로처럼 하늘 길로 연결되어 있어 안온한 느낌을 준다.
일회용 실내화를 꺼내 신자 동료가 어디서 났느냐며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호텔에서 신었던 일회용 실내화를 버리지 않고 가져온 것이 유익하다.
솜처럼 피곤해진 몸을 던지고 있으려니 기내식을 내놓는다.
여기는 새벽 한시이지만 한국은 저녁 9시이니 늦은 저녁식사다.
배탈을 잊으려면 잠 속으로 곯아떨어지는 것이 상수다.
위스키를 더블로 마시면 뱃속도 소독이 되어 나을지도 모른다.
거푸 두 잔을 마시고 눈을 감자 술이 확 취하며 어제 밤 왔던 놈이
빨리 오라며 나를 끌고 간다.
간헐적으로 배가 아프니 이건 혹시 신종 푸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검역신고서의 설사라는 네모에 체크를 하고 포기하는 심정으로 간호사 앞에 서자
검역 신고서를 보더니 마스크 위로 간신히 내민 간호사의 눈이 둥그래진다.
어쩌면 나는 푸루를 달고 왔다며 오늘 저녁 뉴스에 뜰지도 모른다.
“어디어디 들렀어요?”
“여러 군데요”
‘어디 어디 들른 걸 알면 푸루 원인을 찾아내나?’
간호사가 귀 볼기에서 체온을 재더니 갸웃한다.
일단 열이 없으면 푸르는 아닌 모양이다.
“실은 길거리에서 아이스케키를 사먹었어요.”
내말에 피식 웃더니 조심하라며 통과를 시킨다.
관악산 자락의 내 집에 돌아와 베란다너머를 보니 신록은 한층 검어졌고
출장을 떠나던 날 머금었던 아카시아 꽃이 벌써 지고 있었다.
아카시 꽃이 일주일을 채 못 피고 사그라지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여행은 보는 것만큼 얻고 발품 파는 것만큼 얻는다.
터키에서 얻은 것이 시간의 소중함이라면 이번 출장이 내게 준 교훈은
영어는 안 써먹더라도 배워 두란다.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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