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 다시 델리로 향했다.
값비싼 호텔에서 마음껏 뒹굴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샤워나 맘껏 하자며
몸을 담그고 나와 테이블을 보니 뜻밖에도 지배인의 사인과 함께 과일이
놓여있었다.
냉장고 속의 음료수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혹시 이것도 잘못 손대면
덧에 걸려드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망설이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새벽 4시 모닝콜을 부탁한 것을 알고 나름대로 배려한 것이었다.
사과 한 알을 물고 방갈로르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으로 달리는 새벽의 덥지 않은 바람이 초등학교 여름방학을 떠올린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 새벽 보건체조를 마치고 출석 확인 도장을 받아 되돌아올
때쯤 붉은 태양이 솟아올랐고 그 태양은 기나긴 여름을 진이 빠지도록 만들었다.
밭둑에 맺힌 이슬이 고무신 속으로 스며들던 여름날 새벽!
혁명공약을 외우며 걸어가면 고무신 속 이슬은 바각바각 소리를 내며 따라왔고
오이 넝쿨에 매달린 노란 꽃은 입술을 벌릴까 말까 망설이며 태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창 밖 고속도로변에는 노숙하던 중늙은이들이 담요를 걷어 어께에 매고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한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찌하지 못한다지만 국민소득 700달러인 이들이
언제쯤 허리펴고 살게될까?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권을 내보이자 직원이 나를 불러 세운다.
"What‘s problem?"
까닭을 모른 내가 엉거주춤 서서 표정을 살피자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가란다.
‘녀석하고는.. 싱겁기는...’
탑승 후 좌석에 다가가니 왠 동양인이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탑승권을 보여주며 내 자리라고 말하자 그 역시 고개를 갸웃하며 탑승권을
보여준다.
오늘아침은 왜 이리 고개를 갸웃거리는 놈들이 많나?
공교롭게도 그와 나는 동일 좌석이었다.
알고보니 좌석을 중복으로 배정해 놓고는 나를 불러 세웠던 것이다.
이것이 소프트웨어 강국 인도의 전산화 수준이로구나.
시스템 개발에의 ABC 라고 할 중복체크 기능이 빠진 항공권 발급 시스템.....
그들의 정보시스템이 이정도 수준인데 어떻게 소프트웨어 강국일까?
단순 개발인력이 많아 소프트웨어 강국이라 불린 것은 아닐까?
오늘 미팅은 호텔 ‘Fortune’에서 있었다.
어차피 점심을 먹어야 하니 호텔에서 미팅을 하기로 한 것이다.
회의를 시작하자 손등이 까만 남자가 짜이라는 티와 과자를 들고 나온다.
잠시 후면 점심을 먹을 텐데 과자를 내놓는 것이 그들의 문화다.
남자들이 차를 나르고 과자를 내 놓으니 별로 눈요기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성차별이라고 욕을 먹을지 모르지만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붉은 벽돌을 재활용하기 위해 벽돌을 다듬는 일에 어여쁜 처녀를
뙤약볕에 내몰고 시원한 사무실에서는 남자가 서빙을 하다니......
취직이 어려운 인도에서 여자 몫인 사무보조를 남자들이 하고 있으니
인도에서는 여자로 태어날 것이 아니다.
회의를 마치고 바로 옆 뷔페로 이동해 점심을 먹고 나자 구강청결용으로
mouth flesh라는 천연열매를 내놓는다.
우리가 흔히 은단을 먹는 것처럼 이들은 그 씨앗을 먹는다.
자연의 열매를 이용하는 그들이 훨씬 자연친화적이 아닌가 싶다.
오후에는 IBM 인도 연구소를 방문했다.
우리가 인도보다 못할 게 없고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고 할 만큼
IT강국인데 아시아 존에는 중국, 일본, 인도에는 IBM이 연구소를 두고
우리나라는 쏙 빼 논 것이 괘씸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국 다음으로 많은 12억이라는 인구를 보유한 인도가
우리보다 큰 시장임에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국력은 곧 인구수와 비례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나라는 2-30년만 있으면 노인인구가 절반을 넘어서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그 노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젊은이들은 지금보다 배는
더 일을 많이 해야 한단다.
출산율이 높아져 이집 저집 애들 울음소리가 나고 놀이터 이곳저곳에서
애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야 할텐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온몸이 녹초가 되어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왔다.
한국에서 가져 온 소주와 Kingfisher라는 인도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마시고 나니 또다시 인도의 밤은 깊어갔다.
개 버릇 남 못준다더니 폭탄주 버릇은 인도에서도 통했다.
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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