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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인도2(행복지수는 가난과 정비례하는 거 맞나?)

한국의 기지국을 벗어난 휴대폰은 뇌사상태에 빠져 2000년 00시에 멈춰있었다.

손목시계를 가져오지 않은 난 디지털 카메라의 파워를 켜가며 시각을 확인했다.

갓 6시가 넘었는데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커튼을 젖히자 회색빛 물감처럼 뿌옇게 밝아오는 아침 너머로 몸집 큰 까마귀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무리지어 살아가는 까마귀가 왜 혼자 날을까?

 

게스트하우스 7층에서 내려다 본 인도의 아침은 마치 폭격을 당한 폐허처럼

양철지붕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서 있고 공터에는 온갖 고물이 어지러이

널려 있어 6.25 전쟁 후 참상을 보여주는 흑백사진 속의 해방촌 같다.

공존할 수없는 과거와 현재!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간극에 앙금은 없을까?

 

어둠은 부자와 가난한자 가리지 않고 검은 물감으로 덧칠을 해버리지만 여명은

한 겹씩 옷을 벗겨 못가진자의 치부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지붕 위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듯싶어 자세히 바라보니 웃통을 벗은 사람들이다.

이 곳 저 곳 지붕위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던 누더기 천 조각들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고 있었다.

하늘을 지붕 삼아 살아가는 그들의 행복지수가 정말 우리보다 높을까?

고개를 돌리자 멀리 공동 세면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웃통을 벗고 세수를

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의 달동네에서도 공동화장실과 공동 수도를

사용하던 하층민들이 살았건만 망각이란 놈은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건방을 떨게 만든다.

공동 세면장 옆 공터에는 삼각형 천막을 치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양철집이나마 갖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못가진자 축에 든다.

항상 자연인이 부러웠던 나는 비로소 자연인의 정의를 알아내기라도 한 듯

가슴을 저리며 인도의 아침을 맞았다.

 

문득 내 유년의 기억 주머니가 빠끔히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여름 방학 때 덕석 위에서 잠을 자다 사위어가는 모깃불 속에서

온몸을 득득 긁으며 새벽을 맞은 적이 있었다.

내 피의 절반을 모기에게 나누어 주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침을 맞은

그때가 내게는 자연과 함께한 순간들이 아니었나 싶다.

 

여행은 다리품을 파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천에 옮기고자 조심스럽게 문을

밀치고 거실로 나오자 하인들이 아침을 지으며 살포시 미소를 짓는다.

마치 고향집 사촌 누이가 나를 반기던 그 때처럼 그들의 순박한 미소 속에서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흘러나온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와 샤워를 마쳤는데도 동료들은 한 밤중이다.

오전 일정을 어림해 보건데 이미 늦은 시각인데 어지간히 피곤한 모양이다.

게스트하우스 주인도 우리의 출발시간을 알 텐데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은 것이

이상해 거실의 시계를 보니 내 카메라에 세팅된 시각이 30분이나 빠르게

되어있었다.

손목시계를 챙기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며 첫날 아침을 맞은 것이다.

 

TV를 틀자 크리켓 경기가 한창이다.

크리켓 경기는 야구와 비슷한 경기로 인도와 파키스탄 지역은 축구나 야구는

관심이 없고 크리켓 경기가 국기만큼이나 국민적인 스포츠란다.

 

오늘 하루 일과는 내게 어떻게 다가올까?

영어로 미팅을 하는 그들의 말을 얼마만큼이나 소화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걱정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건만 미세한 긴장감이 스트레스다.

 

오전 내내 알아들을 수 없는 시간들을 참아내고 밥값도 못한 주제에

점심 먹기가 민망스럽다.

식당을 찾아 거리로 나오자 한 낮의 태양이 우리를 말려 죽일 기세다.

피카디리라는 극장과 함께 붙은 음식점으로 들어서니 태양은 뒤를 쫒다말고

멀거니 우리를 바라본다.

어떤 음식을 골라야 할지 망설이다 황토 화덕에서 구워낸 탄도리 치킨에

케밥을 시켰다.

앞으로도 음식을 잘 모르니 탄도리치킨과 케밥을 먹자고 한다.

이러다가 혹시 인도에 와서 닭고기만 잔뜩 먹고 돌아가는 건 아닐까?

어찌됐건 음식 가림을 하지 않는 나는 인도에 정착해도 굶어죽진 않을 성 싶다.

오후 미팅 또한 내내 귀에 들어오는 것은 말이 아니고 소리였다.

말이 아닌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고역이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늘어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내가 왜 영어를 손 놓았던가 후회막급이다.

‘정주영이는 영어를 못해도 현대그룹 회장을 하지 않더나?’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합리화시키던 말이다.

Silent, sleep, smile...

한국인이 해외 컨퍼런스에 가면 귀가 열리지 않으니 조용하고 그러다 보니

졸리고, 졸다 깨 외국인과 눈이 마주치면 겸연쩍어 슬며시 웃는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맥주 한잔을 마시며 어서 빨리 날자가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시 양철 지붕에는 모기장을 치고 가로등 불빛을 빌려 잠을 청하는

인도 청년들이 굼벵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못가진자의 치부도 덮어주는 아름다운 밤!

 

 

  

오늘 밤에도 별이 뜰까?

하늘을 바라보니 초롱초롱한 별들이 빛나는 것으로 보아 양철지붕

옥상의 청년들에게 해코지는 하지 않을 성 싶다.

 

0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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