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트로이는 전쟁으로도, 컴퓨터 바이라스로도 더 알려진 곳이다.
트로이와 미케네의 10년 전쟁은 목마에 의해 승패가 갈라지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원인은 빌미가 있게 마련이다.
트로이 전쟁도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눈이 맞아
전쟁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메낼라우스는 형인 미케네의 아가멤논에게
복수를 청하고 아가멤논은 평소에 욕심내왔던 무역의 중심지 트로이를
차지하려 한판 싸움을 걸었다.
에게해를 건너온 아가멤논은 10년동안 전쟁을 하면서도 승리를 나꿔채지 못했다.
하지만 목마를 바치고 휴전하겠다는 기묘한 계책이 승패를 갈랐다.
트로이의 왕은 휴전 선물로 목마를 받는 것은 승리나 다름없다며 들떠 있었다.
목마를 성안으로 절대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는 카산드라 공주의 말을
묵살한 것이 결국 전쟁의 패인이 되었다.
내가 본 트로이는 10년 동안이나 거창한 전쟁을 할 만큼 넓은 곳도
그렇다고 지리적으로 가치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고고학자나 지리학자가 아닌 엔지니어인 내가 그 내막까지야 알 수 없지만
역사가들이 부풀려 만든 얘기가 아닌가 싶다.
괜히 트집을 잡고 싶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의 세느강이 그랬고 영국의 템즈강이 그랬고 우리나라 중랑천보다
폭이 좁은 어찌 보면 샛강만도 못한 것을 서양인들은 부풀려 허풍을 떤 것이다.
어찌됐던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빌미 때문에 일어나는 법이니 남.북한도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마음을 열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점심을 먹고 말마르해와 에게해가 이어지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이스탄불로
향했다.
버스와 사람을 함께 싣고 여기가 거긴 듯 가까이 보이는 유럽 땅 갈리폴리 반도를
향해 닻을 올린 배는 무겁게 스크류를 돌리기 시작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의 여정은 내게 무엇을 남겼는가?
내가 찾은 투루크는 정말 그 옛날 피를 나눈 우리의 형제국인가?
“터키를 아십니까?”
88올림픽이 한창이던 어느 날 터키 고관이 서울 길거리 시민들에게 물었지만
대부분 잘 모른다는 대답을 듣고 크게 실망한 나머지 귀국한 그가
‘짝사랑은 이제 그만’이란 글을 써 터키 국민의 가슴을 아리게 했단다.
사랑하는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 때 받는 배신감과 공허감....
그 후 14년이란 세월이 흘러 2002 한일월드컵 예선전에서 브라질과 맞붙은
터키는 형제국에서 심판 또한 한국인이라 따놓은 당상이라고 기뻐했건만
헐리우드 액션에 속은 우리나라 주심은 브라질에게 페널티킥을 인정하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 속에서 또 한번 형제에게 배신당했다며 울분을 삼켰단다.
그런데 4강에서 우리와 맞붙은 터키!
광주 월드컵 경기장 관중석으로 말려 올라가는 씨별(초승달 + 별 = 터키 국기)은
서운한 감정을 한 순간에 녹이고 말았단다.
지난 일주일의 여행은 일상의 끈을 놓게 만든 자유의 날들이었다.
이제 오늘 밤이 지나면 여정을 마무리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가야한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바닷바람에 얼굴을 맡기고 앉아있으니 복잡한 일상이
그립다.
“할아버지! 힘들지 않으셨어요?”
함께 여행을 하셨던 8순 할아버지가 갑판으로 나오신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
‘내가 20년만 젊었으면.... 아니 10년만 젊었으면.....’
혹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으실까?
역사에 가정이 없듯이 인생에도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건만 난 가끔 내가
‘10년만 아니 5년만 젊었다면....’이라며 가정을 하곤 한다.
내가 이루지 못했던 일을 단박에 실천할 것처럼......
그렇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8순의 할아버지가 나를 보면 나는 젊은 청년일테니까......
이스탄불에 도착한 우리는 실크로드의 마지막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를 들른 후
고려정이라는 한식집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그동안 케밥이라는 터키 전통 음식이 내게는 전혀 낯설지 않아 음식걱정은 없었다.
저녁을 마치고 발리쇼 관람을 하기로 했지만 계모임에서 단체로 온 14명은
자기들끼리 따로 국밥이 되어 편을 가르고 있었다.
옵션관광이니 탓할 바는 아니지만 지난 일 주일동안 말 한 마디 건네기
어려울 만큼 장벽을 친 그들이 얄밉기 짝이 없다.
버스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쟁탈전은 가이드가 조절하여 해결이 되었지만
아침 식사 때 찐 계란과 과일이 부족한 사태는 해결방법이 없었다.
결국 호텔 종업원이 계란껍질을 벗겨 절반으로 잘라놓고 과일도 통째로
내놓지 않은 해프닝이 벌어지다니 형제국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극장에 들어서자 태극기가 놓인 좌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객석에는 그리이스, 스페인, 이탈리아, 동양의 일본 등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템포 빠른 반주와 함께 온몸을 흔들어대는 발리춤은 무희의 젖가슴을
출렁거리게 만들고 무대의상에 붙은 반짝이는 유리구슬들이 현란하다.
해외여행을 가면 손님대접을 한답시고 대부분 아리랑을 연주를 하는데
리더가 ‘서울의 찬가’를 부른다.
목청껏 따라 부르다보니 정말 아름다운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 노래가 아부하기 위해 지어진 노래라 할지라도......
목이 컬컬해 맥주잔을 들이키자 갑자기 배경음악이 멈추고
무희가 우리 테이블 쪽으로 걸어오자 스폿라이트도 함께 따라온다.
혹시 팁을 젖가슴 속에 넣어달라고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1달러짜리 지폐를 준비하지 못한 나는 그녀와 눈을 맞추기가 겁나 맥주컵에서
입을 떼지 않고 있었다.
모든 시선들이 무희의 걸음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테이블로 다가온 그녀는 다짜고짜 내게 악수를 청하더니 무대로 끌고
올라간다.
오뉴월 복날 팔려가는 개 마냥 엉덩이를 뒤로 빼보았지만 나도 모른 힘에
끌려가고 있었다.
아무 잘못도 없이 무대로 끌려가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자 그제야 드럼을 두들기는 반주가 흘러나온다.
그녀는 허리를 구부려 엉덩이를 두드리며 따라하란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짓인가?’
그렇잖아도 맥주 몇 잔에 붉어진 내 불은 불이 붙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이렇게 많은 관중들을 놓고 무대 위에 선 것이다.
관중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음악이 그쳤다.
무희는 자신의 손을 엉덩이에 붙이고 따라하란다.
무슨 게임인지 모르지만 잔뜩 긴장한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그녀를 따랐다.
또다시 음악이 나왔다가 멈추자 내 손은 엉덩이에 있었지만
무희의 손은 자신의 허벅지에 있었다.
내손은 항상 무희와는 다르게 놀고 있었고 그 때마다 관중들은 배꼽을 잡는다.
한 술 더 떠 가랑이를 쫙 벌리고 앉아 고개와 손이 따로 노는 춤을 따라하란다.
가랑이가 벌어지지도 않지만 낯가죽이 두껍지 못해 매사 하는 짓이 어리숙하다.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나서야 그녀는 나를 보내주며
키스세례를 퍼붓는다.
얼떨결에 당했지만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으니 나도 죽으면
좋은 세상으로 가지 않을까?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터키 소주 라크를 스트레이트로 한 잔 마시고 나니
나의 혀도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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