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와 이른 봄나들이를 나섰다.
나들이라고 해야 드라이브가 고작이지만 걷기가 시원찮은 당신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여행이다.
딱히 정해진 곳이 없기에 발 닿는 데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차를 몰았다.
어쩜 이번 여행이 어머니와 마직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니
마음이 무겁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방정맞지만 항상 이순간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정성이 더해지는 건 사실이다.
나주 세지면으로 들어서자 넓은 배 밭에서 봄을 맞을 채비를 하는 농부가
가지치기를 하느라 부지런히 몸을 놀린다.
스쳐가는 차창 밖 배나무에는 수많은 페트병들이 매달려있다.
‘왜 페트병을 매달아 놓았을까?’
호기심이 발동하여 차를 세우고 다가가보니 페트병에는 죽은 나뭇가지가
하나씩 꽂혀있다.
“요것이 어디다 쓰는 것이요?”
“아. 그거? 수분수요”
느닷없이 차를 세우고 묻는 내 모습이 흥미로운지 일손을 멈추고 대답을 한다.
‘수분수(授粉樹)?’
농부의 말은 암술에게 꽃가루를 제공할 수술을 만드는 나뭇가지란다.
봄에 탐스런 열매를 맺도록 유사한 배나무 가지를 잘라 꽃아 두면 꽃이 피고
오가는 벌들이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에게 묻혀준단다.
음과 양의 조화가 없으면 균형이 깨지고 마는 자연의 섭리 앞에 우리 인간은
혹여 음양의 조화를 일부러 파괴하지는 않았을까?
차를 돌려 장흥으로 향했다.
시골길 들판에는 지난해 가을 수확을 못하고 버려둔 배추들이 마치
담요를 뒤집어쓰고 구걸하는 걸인들처럼 회색빛 옷을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다.
“엄니! 저 배추 뒤집어엎고 봄 씨앗 내야겄네?”
지난 가을 배추 값이 폭락하여 출하를 못하고 얼어 죽었으니 하는 말이다.
“아~니. 좀 기다렸다가 먹으면 되는 것이여......”
“얼어서 곯아 물케졌는데. 죽지 않았나?”
“봄똥이란 것이여.”
엥? 지난 가을 수확하지 않고 버려둔 배추가 봄똥이라니...
봄똥이라는 씨앗이 따로 있는 거 아니었나?
배추가 얼어 죽지 않고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얼갈이가 표준말이란다.
잔설이 희끗한 텃밭은 얼었던 땅이 녹아 질퍽거린다.
저 봄똥은 지난겨울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삭풍이 불어올 때마다 죽음의 벌판에 온 몸을 내 맡긴 그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때마다 옷을 벗어 던지듯 한 겹씩 껍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가까이 다가가보니 배추포기를 돌돌 말고 있는 말라버린 회색빛 이파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하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살을 포기하며 버틴 배추!
혹시 나는 더 많이 차지하려고 버둥대지는 않았는가?
버려야 얻는데 나는 지금까지 얼마큼 버렸는가?
부풀어 오른 처녀 젖가슴처럼 금방이라도 묵은 포대기를 툭 찢어버리고
봄을 알릴 것만 같은 봄똥이 버림의 교훈을 일깨워준다.
0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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