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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초가을 한 낮의 정사

(방아깨비는 어디 있을까? ㅎㅎ)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던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한로가 지났는데도

더위가 가실 줄 모른다.

정말 아열대 기후로 들어선 건기인가?


돼지국밥을 맛있게 하는 집을 찾아 나섰다.

고즈넉한 언덕을 등에 업은 그리 멋진 집은 아니지만 삽목을 해놓은

채송화를 보고 있으려니 마치 화원에 온 듯싶다.

한참동안 화초에 혼을 빼앗기다 음식점으로 들어서자 괴목과 수석이

빙 둘러 앉아 수다를 떨다 말고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뚝 그친다.


애호박을 채 썰듯 잘게 썰어 돼지고기와 함께 끓인 돼지 국밥을 보니

어릴 적 돼지기름이 몇 점 하얗게 떠다니던 풍성한 국물이 떠오른다.

어쩌면 사람들은 어릴 적 길들여진 입맛을 그리 오래 기억하고 있을까?

땀을 뻘뻘 흘리며 국밥을 비우고 나자 그제야 홀이 듬성듬성 한가해진다.


“우와 배불러.”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그제야 음식을 기다리는 여인네 세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맞기는 맞는가 보다.

‘참 곱게도 생겼다’

멀거니 바라보자 수다를 떨던 여인들이 눈을 맞추며 싱글거린다.


“지사장님. 한번 만져보세요.”

“뭘?”

장난기가 동한 직원이 만져보라는 것은 여인들 옆에 옷을 훌렁 벗고 서있는

목각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게도 젖가슴 부분은 색깔이 하얗고 나머지는 갈색으로

마치 그리스전설에서처럼 금방이라도 사람으로 환생할 듯 잘 깎아 놓았다.


여인네들만 없으면 한번 만져 보련만 용기가 없어 쭈뼛거리고 있으니

여인들이 농을 건다.

“사모님 거는 이렇게 안 생겼어요? 한번 만져 보세요.”

마치 목각 주인이라도 된 양 여지껏 돈 받고 만지게 하다가

공짜로 선심 쓰듯 한다.

슬그머니 장난기가 동해 가슴을 만지다 슬쩍 사타구니를 만지고는

붉어진 얼굴로 돌아서자 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깔깔대고 웃는다.


“저 꽃이 뭔 꽃이다요?”

밖으로 나와 국화 옆에 서있는 내 키 보다 훨씬 큰 꽃나무를 가리켰다.

이름 모르는 꽃들이 진저리 칠만큼 널려있는 한 구석에 나팔처럼 주둥이를

쭉 내민 꽃이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흔히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거는 천사의 나팔이고 이거는 일본 채송화요”

그러고 보니 聖畵속의 날개달린 아기천사가 나팔을 불고 있는 것처럼

천사의 나팔꽃 속에서는 금방이라도 영광의 노래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땀 기운을 식히려고 쭈그려 앉아 앙증맞은 채송화 꽃을 보고 있으려니

꿈틀거리는 이파리가 시선을 붙든다.

자세히 보니 그건 이파리가 아니고 방아깨비가 싸우고 있었다.

몸집이 큰 방아깨비는 가만히 있고 등에 엎인 방아깨비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적 메뚜기가 메뚜기를 업고 다니는 것을 잡으면 한번에

두 마리를 잡을 수 있어 오지던 생각이 떠오른다.

이맘때쯤에는 시골 들녘에 메뚜기가 지천으로 나르고 있었고 운 좋게

방아깨비를 잡으면 방아를 찧었던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방아 방아 찧어라’

방아깨비 다리를 붙들고 주문을 외우면 정말 방아를 찧듯 위아래로

몸을 흔들었던 것이다.

큰 메뚜기가 작은 메뚜기를 업고 다니는 것이 짝짓기라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짝짓기를 하고 있는 방아깨비에게

침입자가 나타난 것이다.

대낮의 정사를 즐기는 그들에게 도전하는 녀석은 무슨 심보일까?

모른 척 눈감아 주면 안 되는 것일까?

침입자가 한사코 등에 오르려하자 이미 짝짓기에 성공한 수컷이

앞다리로 암컷을 붙들고 긴 뒷다리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들도 질투심이 있을까?

기다란 원뿔 같은 못생긴 머릿속에도 IQ가 있을까?

풋 웃으며 녀석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갑자기 침입자가 벌렁

채송화 잎으로 나가 떨어졌다.

필사적으로 암컷을 붙들고 있던 수컷이 긴 다리로 침입자를

튕겨버린 것이다.

결국 튕겨나간 방아깨비는 더 이상 도전을 포기하고 슬금슬금

반대방향으로 기어간다.

‘그럼. 그래야지. 정정당당해야지’


지난여름 귀가 따갑도록 짝을 불러대던 매미들은 자식농사 지어놓고

하나 둘 개미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이들이 소리 없이 정사를 즐기고 나면 이 가을도 훌쩍 지나가고

말 것이다.

 

 

덧없는 세월 앞에 미물들의 보이지 않는 종족번식을 위한 싸움을 보노라니

인간들 또한 닮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조물주는 인간에게 배란기가 아니라도 아무 때나 정사를

허용한 것은 어쩌면 최대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병든 후에 후회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色不謹慎 病後悔!

0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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