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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놀자귀신들

48. 월동준비 하던 날

 

“꽤액! 꽤~액!”

돼지가 두발을 우리 난간에 걸치고 서서 목청껏 소리를 질러 댑니다.

구정물(1)을 바케쓰에 퍼내 구시(2)에 부어주니 그제야 조용합니다.

코 바람을 내불어 구정물을 뒤흔들어 건더기를 먹는 모습과 쭉쭉 소리가 나도록

구정물을 빨아 먹는 모습이 너무 맛있어 보여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아버지가 오셔서 우리를 열어 재치니 목살 뱃살 할 것 없이 추욱 늘어진 녀석이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듯 뒤뚱거리며 겨우 문턱을 넘어 마당으로 나오더니

뒤뚱거리며 이곳저곳 냄새를 맡고 걸어 다니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두엄을 퍼내는 동안 대빗자루를 들고 장독대 앞에서 돼지를 감시했습니다.

돼지는 장독대건 뭐건 아랑곳 하지 않고 주둥이로 밀어대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죠!

녀석은 회초리나 작대기보다도 대나무 빗자루를 얼굴에 갖다 대면 제일 싫어합니다.


뭐가 좋은지 큭! 큭! 소리를 내며 주둥이로 마당을 파내어 흙도 쳐 먹습니다.

역시 돼지는 돼지입니다.

마당 구석지가 마치 쟁기질 해 놓은 듯 푹푹 파입니다.

아버지가 퍼낸 썩은 두엄이 냄새가 좋은 건 아니지만 맡을만합니다.


돼지를 몰아 우리 안에 몰아넣자 생소한 듯 이리저리 코를 들이밀며 오갑니다.

말려둔 풀과 보릿대를 넣어주자 입에 물고 흔들며 아불 깔 듯 자리를 만드는 폼이

짐승이지만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녀석도 월동 준비가 뭔지 알아차린 듯 합니다.


아버지는 커튼처럼 매달린 가마니를 걷어냈습니다.

돼지우리에서 퍼낸 두엄을 측간에 있는 재 묻은 똥과 섞기 위함이죠!

우리 집 변소는 양다리를 벌리고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 재래식입니다.

앞에는 부엌 아궁이에서 받아낸 재가 쌓여 있고 기다란 판자도 놓여있습니다.

지만이네처럼 변을 받는 독이 없어 판자로 똥을 버무려 뒤로 힘껏 쳐내기 위함이죠!.


마치 김밥 말아 놓은 듯 검은 재와 버무려진 똥을 돼지우리에서 끄집어낸 두엄과

섞는 일이란 쉽지가 않습니다.

아버지가 두엄을 섞자 측간에서 하얀 김이 꾸역꾸역 밀려 나옵니다.

닭들은 꾸물대는 벌레를 잡아먹으려 아버지의 삼지창 앞에서 어른거립니다.


난 측간에 가면 이상하게 침이 나와 수없이 침을 뱉어 댑니다.

아까 돼지가 맛이게 구정물을 먹던 생각은 사라지고 토악질일 나올 것만 같습니다.

문득 지난 대 보름날 밤에 측간에 앉아서 찰밥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보름날 밤에 측간에서 얻어온 찰밥을 한입 먹고 오라는 어머님을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1)구정물 : 설거지가 끝난 더러워진 물

2)구시 : 구유의 방언


** 가을걷이가 끝나고 월동을 위해 돼지우리를 청소하면 바쁜 일은 거의 끝난다.

재래식 화장실은 아궁이 재와 변을 버무려 뒤로 쳐내도록 되어있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돼지우리 두엄과 섞어두면 잘 썩은 거름이 되는 것이다.

근데 측간에서 찰밥을 먹는 습관은 입이 짧아 편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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