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형이 왔습니다.
힘도 세고 싸움도 잘 하는 형을 따라 고기 잡으러 나섰습니다.
아랫동네 힘센 애들이 두려웠지만 오늘은 걱정 없습니다.
삽을 메고 성큼 성큼 걷는 형의 모습이 든든하기 그지없습니다.
“지만아! 네가 양재기 들어!”
바께쓰를 드는 것은 괜찮은데 양재기를 들고 가려면 창피하기 그지없습니다.
지만이가 머뭇거리다 혹시 안 끼워 줄까봐 마지못해 양재기를 들고 뒤따릅니다.
“백구!~”
논둑길로 들어서자 백구 녀석이 구불구불한 논둑을 내달려 개구리를 쫓다 말고 우리들
앞으로 달려 오고가기를 반복합니다.
멀리 참새 떼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논둑길에 고개 숙인 나락들이 무릎에 부딪힙니다.
물이 꽉 차 흘러가던 개울에는 물이 많이 줄었습니다.
추수를 앞두고 논의 물고를 열어 물을 빼는 참이라 물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개울 폭이 가장 좁은 곳을 찾아 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형이 뗏장(1)을 푹푹 떠 물을 막기 시작합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까만 물잠자리 한 쌍이 서로 꼬리를 물고 날아갑니다.
우리들은 물을 품기 시작 했습니다.
미련한 놈은 막고 품는 것이 상책이라는데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허리가 아프지만 고기 잡을 생각을 하니 까짓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뒤쪽을 보니 둑이 터질 듯 불안합니다.
형이 재빨리 달려와 뗏장을 파서 우리에게 줍니다만 둑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아예 터진 둑에 퍼질러 앉아 물을 막았습니다.
“우와! 괴기좀 봐라!”
물이 줄어들자 흙탕물 속에서 붕어들이 허연 배를 내놓고 파닥거리고
등이 시커먼 메기들도 발바닥 밑에서 미끌미끌 오갑니다.
하지만 한쪽에 몰려있던 소금쟁이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가 않습니다.
배가 누우런 미꾸라지를 잡으려 하지만 녀석은 요리조리 빠져 나가 흙탕물 어딘가로
숨고 맙니다.
“움마야!”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드렁허리(2)가 풀숲에서 몸을 S자로 꼬며 나옵니다.
난 깜짝 놀라 얼른 물 밖으로 나와 지켜보자 형 삽으로 여지없이 두 동강을 냅니다.
붉은 피가 흐르는 드렁허리를 삽으로 떠 물가로 던져 올린다는 것이
내 발등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난 정말 질겁하여 오줌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논두렁 한쪽에서는 허연 삘기(3) 꽃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1) 뗏장 ; 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의 조각.
2) 드렁허리 : 몸길이 40센티 정도로 뱀처럼 가늘고 긴 장어와 비슷함
3) 삘기 : 띠의 어린 순을 말하며 봄에 껌처럼 씹어 먹고 가을에는 억새처럼 하얗게 피어남
** 어릴적 우리들은 도랑을 막고 물을 품어 고기를 잡곤했다. 가을이면 도랑의 물이 줄고 여름내내 살진 고기들을 잡는 재미가 쏠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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