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꽃 하얗게 꽃을 피우니
해거름 들녘에 인생이 무상하다
소슬바람 한줄기에 하늘대는 코스모스
가을들녘 허리 굽혀 누굴 기다리는가?
어릴 적 뛰놀던 아해들 소리!
들리는 듯 들리는 듯 멀어져간다.
인생이 별거드냐 욕심 없이 살면 될 것을!
들녘에 억새꽃이 피면 서러움에 목이 멘다.
집 나서자 애들처럼 좋아하는 노모 모시고 이곳저곳 기웃기웃 시골길을 달리니
유년의 추억들이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차창으로 흐르는 바람 속에 때 묻은 잡념을 날려 보내며 영구산 운주사로 돌아드니
석양의 억새꽃이 서럽게 휘청댄다.
‘끝내 못다 한 얘기! 꼭 이뤄야 할 꿈!’
출렁이는 글귀를 새겨보니 선열들의 얘기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듯하다.
아! 도선국사! 당신은 왜 그리 성급하셨습니까?
구백 아흔 아홉 개!
마지막 한 개를 못 만들고 석공들이 하늘로 올라가도록 놔두다니 정말 당신이
영험한 도를 틔운 리더가 맞는가요?
그 많던 불상과 석탑들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겨우 100여개 남짓하다니
가슴 한켠에서 양심이 꿈틀거려 얼굴이 붉어온다.
내 유년시절 이곳에서 돌덩이 주어다가 학독으로 쓰던 무지렁이인지라....
마당바위 올라서니 여기에도 석탑이 우뚝!
그들은 시간에 쫓겨 밤새도록 내키는 대로 아무데나 석탑과 석불을 세웠는가?
와불을 찾아가니 길목에 우뚝 선 머슴불이 외롭다.
둥그런 칠성바위 밟아보고 돌아내려와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군을 찾아가니
지천에 널린 돌이 모두 고인돌이다.
‘마고할멈’이 천불천탑 짓는다는 소식 듣고 치마폭에 싸들고 가던 핑매바위!
새벽이 되어 놓아버렸다는 그 바위가 천불천탑과는 30여리 떨어진 곳에
동그마니 홀로 있다.
선인들은 왜 하필이면 돌을 갖고 주물럭주물럭 장난들을 치셨는가?
모르긴 몰라도 어딘가에 묻혔을 쇳덩어리를 주물럭거렸다면 아마 세계를
제패하지 않았을까 싶다.
쥔 없는 밤나무 밭에서 알밤을 줍자니 어느덧 서산에 해가 기운다.
검붉은 지내추가 깊어가는 가을을 재촉하고 갓 핀 억새가 고개를 펴며 하얗게 웃는다.
“어무니! 안 피곤해?”
“엉! 좋아야!”
7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가 지천명한 자식과 함께 한 나들이가 좋은지
연신 벙긋대니 서산에 기우는 인생이 별로 서럽지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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