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욕장에는 젊음이 있고 낭만이 있다.
하지만 난 그런 낭만보다는 사람이 많아 거추장스럽고 바가지 씌우는 기억만이
떠올라 휴가라고는 해도 별로 무감각한 편이다.
아내의 등쌀과 노모를 뵙는다는 핑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밀리 듯
대천으로 왔지만 어떤 의무감 외에 크나큰 감흥이 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잡한 서울을 빠져나와 리조텔에 짐을 풀고 나니 그런대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해안보다 훨씬 큰 대천바다를 보니 막혔던 가슴이 트여온다.
흔히 바닷가에서 보았던 통기타 낭만은 기억 저편에 있었다.
모래톱에 밀려오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어머니의 옆얼굴을 훔쳐보니
삶의 지친모습에서 많이 비켜 선 모습이 보여 안심이 된다.
머드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미용에 좋다는 그 판에 끼어들었다.
쑥스러워 머뭇거리는 어머니의 얼굴에 진흙을 바르자 속으로는 반기신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우리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그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니 떼어놓고 온 애들이 짠하다.
물론 녀석들이 동행을 거부했지만 빈약한 용돈 때문에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할 그들을 생각하니 맘에 걸린다.
옛날과 달리 비키니가 보이지 않고 대부분 반바지에 헐렁한 웃옷을 걸치고 물놀이를 즐긴다.
하지만 비키니 고무줄이 살을 파고드는 아줌마의 불어터진 몸매를 보며
그녀의 꿈에 부푼 여행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자신의 몸매가 과거의 그 모습인줄 착각하고 나름대로 멋을 부린 모양이다.
주책없이 가슴파인 여인들의 몸매에 흘깃흘깃 눈길이 가니 아내보기 민망하다.
남자들은 아내를 두고도 이렇게 엉뚱하게 한눈을 팔수 있는 것이다.
낙조를 보고자 해변에서니 안개 속에 감춰진 해가 불덩이를 일굴 생각도 없이
힘없이 사그라들고 있고 핏빛 눈썹달이 덩그마니 떠있다.
절뚝거리는 어머니와 함께 바다가 보이는 창 넓은 횟집에서 어둠을 맞았다.
해변의 밤!
불야성을 이룬 거리로 가슴 선을 훤히 드러낸 처녀들이 떼 지어 오간다.
가슴 설레 잠 못 이루는 해변에서 얼큰하게 술에 취해 그동안 쌓인 모든 잡생각들을
비우려 애를 써보지만 밀린 일과 두고 온 얼굴들이 떠오른다.
바닷가 이곳저곳에서 폭죽이 터지기 시작한다.
10연발 폭죽을 양손에 든 처녀가 완주한 마라톤선수 손을 들 듯 연거푸 쏘아 올린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뙈놈이 번다는 말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불꽃을 쏘아 올리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우리가 덤으로 즐기니 하는 말이다.
문득 한순간에 재가 되는 10,000원이라는 돈이 아깝기 그지없다.
자기 과시욕에 도취되어 한순간에 아르바이트 2시간 수입을 하늘에 날리는 것이다.
그나저나 타 오로는 저 폭죽만큼이나 우리경제도 불붙으면 얼마나 좋을까?
[04.7.23 대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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