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섬진강을 처음 만난 것은 5년도 훨씬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형제들 간의 계모임을 따라 쌍계사로 벚꽃구경을 가는 길에서였다.
봄 가뭄 탓인지 가난한 물줄기는 강 가운데 바위들을 발가벗겨놓았고
강둑에 갓 피기 시작한 매화 또한 가난이 줄줄 흘러 넘쳤다.
난 그날 쌍계사 입구 음식점 수족관에서 참게와 은어 또한 처음 보았다.
은어라는 놈들은 바람에 대나무 잎 팔락이듯 한시도 쉬지 않고 하얗게
배를 뒤집었다.
바로 옆 수족관에는 온몸에 털이 무성한 참게가 집게발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난 그해 봄 섬진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기억을 간직한 채
그와 헤어졌다.
올 봄 이곳 광주로 내려와 섬진강을 지척에 두었지만 다섯 달이 지나도록
그를 찾지 않았던 것도 실은 그 때의 실망 때문이었다.
그런 내게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섬진강으로 놀러오란다.
이름도 특이한 압록에서 음식점을 하는 친구를 만나 휴일을 함께
보내잔다.
압록은 보성강이 섬진강을 만나러 달려와 합쳐지는 곳에 있는 마을이다.
보성강에서 가다보면 왼쪽에는 ‘경찰 승전탑’이 있고 오른쪽에는
경찰 순국 위령비가 있다.
6.25 전쟁 때 곡성경찰서장이 300명의 병력으로 순천에 주둔한
북한군 603기갑연대를 궤멸시킨 승전을 기념하고 있지만 이후
북한의 대대적인 보복으로 경찰이 몰살당하는 가슴 아픈 기억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란다.
그곳 ‘경찰 승전탑’을 조금 못가 오른편에 ‘여울목’이라는 매운탕집이 있다.
그 매운탕 집 주인과 괴벗쟁이 친구인 지인은 그곳에서 더위를 피하잔다.
그 곳에는 지인의 고향친구 몇이 더 와있었다.
처음 본 그들과 함께 매운탕집 주인을 따라 은어 잡이에 나섰다.
매화나무가 더위에 지쳐 축 늘어진 보성강변의 여름은 고요했다.
화살처럼 강하게 내리꽂는 햇빛이 모든 나뭇잎들에게 항복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보성강은 섬진강과 달리 속살을 내비추지 않는 다소곳함이 풍겨났다.
이곳 강변에서 가난을 주워 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물을 치기 시작하는 친구의 뒷모습에서 유년의 친구 춘식이가 보인다.
그는 그물을 직선으로 치지 않고 둥그렇게 치기 시작했다.
수심이 어른 무릎정도였다가 갑자기 키를 훨씬 넘긴다.
그가 물장구를 쳐 고기를 쫒고 뒤이어 그물을 걷기 시작한다.
난 그물을 걷는 그의 표정을 마치 어린애처럼 애타게 바라보았다.
“우왓. 그게 머여? 은어가 맞어? 수족관에 있는 것과는 틀리는데...”
“엉. 수족관에 있는 것은 양식이라 죽지 않고 오래 가”
어느새 우리는 반말을 해가며 벌거숭이 개구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족관에서 본 은어보다 세배 이상 크고 마치 연어를 닮았다.
양식
은어와 달리 횟감으로도 쓰인단다.
어쩌면 하느님이 은어를 창조할 때 신들의 음식으로 만든 게 아닐까?
“너는 세상에 내려가면 이슬이 모인 물에서만 살 수 있으리라
그리고 너는 우리 신들이 너를 부를 때만 네 몸을 바치게 되리라.“
은어는 맑은 물에서 몸을 깨끗이 한 후 신들의 식탁에만 올라간 것이
아닐까?
은어 회를 입에 넣으니 입안 그득히 수박 향내가 풍긴다.
“담에 올 때는 미리 전화를 하고 와”
자연산 은어는 미리 잡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약속한 날 새벽에 잡는단다.
“그래. 꼭 한번 올게.”
나이가 들어가면 어린애들처럼 이해타산 없는 만남으로 바뀐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나이가 들어감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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