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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극락강의 봄

극락강변에 봄이 오고 있다.
내가 광주를 떠난 지 어언 25년이 지났다.
극락강은 아득한 기억 저편에 숨어있을 뿐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고
각했었다.
하지만 장년이 되어 돌아온 나에게 잊혀진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중학교 입학한 그 해 초여름 이름도 이상한 극락강이란 곳에
우리는 양푼을 들고 모였다.
극심한 한해가 들어 쩍쩍 갈라지던 논에 물을 품으러 왔던 것이다.
오늘 파릇파릇 새싹이 돋기 시작하는 강둑을 달려 비행장 울타리를
끼고 돌아드니 또 하나의 잊혀졌던 청년기의 기억 조가리가 떠오른다.

제1전투비행단이라 불리는 이곳에 더블백을 매고 들어서던 날도
이런 봄날이었다.
잔뜩 겁에 질린 나는 비행장 정문에서 헌병들에게 몇 차례 얼차려를
받고 군 생활을 시작했다.
활주로에서 시멘트 부스러기를 줍던 졸병시절.
군기가 더럽게 센 수송특기인지라 초소 근무를 나가는 것이
오히려 기다려졌던 청년기의 꿈들이 배어있던 곳이다.

그 옛날 내가 보초를 서던 초소가 그대로 있고 장암리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도로보다 낮은 푹 꺼진 막걸리집이 지금도 그대로다.
보초를 서던 밤 남몰래 듣던 음악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새삼스럽게 들리는 듯하다.

그 때 내 꿈은 무엇이었던가?
무정한 세월이 덧없이 흘러 이제 장년이 되어 되돌아와 보니
지난 세월이 서럽다.
지하철 공사로 범벅이 된 도로위에서 주춤거리며 연신 초소를
훔쳐보았다.
오늘 같은 이른 봄날 일요일 섹터 보초근무를 하던 날이 스치고 지나간다.
비행장에는 극락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이 늪지를 이루었다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해 이른 봄 날 우리는 차가운 늪에 팬티바람으로 들어가 가물치를
잡기 시작했다.
특별하게 잡는 도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늪을 걷다보면 발바닥에
미끈하게 밟히는 것이 가물치였다.
가물치는 아직 진흙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었고 밟혀도 꿈틀할 뿐
미련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물치를 잡는 방법은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진흙과 함께 땅위로
퍼 올리면 그만이었다.
대검으로 목을 자르고 커다란 들통에 끓여 먹었지만 아무 맛도 없었다.

하지만 가물치는 우리들에게 소중한 물물교환의 수단이 되었다.
초소 샛문을 따고 몰래 막걸리와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휴일에는 그 가물치 덕분에 가끔 막걸리 파티가 벌어지곤 했다.
막걸리 집 딸 소영이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내 청년기를 되돌리게 하는 초소를 바라보며 오늘도 출근길을 재촉한다.
06.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