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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혼자있는것이 나쁘진 않아...

 

“아가, 왔냐? 미안허다. 밥은 묵었고?”

“엉. 된장국 맛있게 끓여서 묵었어. 머가 미안해?”

“그래 고맙다.”

텅 빈 사택으로 들어와 막 저녁을 마치자 걸려온 전화다.

유독 맛있게 끓였다며 강조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된장국이 너무 맛없어 어떻게 끓여야 맛있느냐며 철없이 물었던 것이

어머니께는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만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입에 바른 말이 아니라 이제는 된장국을 제법 맛있게 끓일 줄 안다.


80노인이 60 아들에게 길 조심하라는 걱정처럼 나는 영원히 어머니

앞에 어린애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이 두려웠고 심란했다.

출근 길 넥타이까지도 아내가 선별 해 준대로 걸치고 나가는 늙은

애였으니 걱정이 태산 같았던 것이다.

더구나 내가 직접 밥을 짓고 빨래를 한다는 것은 커다란 걱정거리였다.


사람은 대부분 변화를 두려워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정도가 심한 편이다.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직장에 출근하는 것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가족과 떨어져 그 넓은 숙소에서 혼자 지낸다는 것은 외로움은 둘째

치고라도 불편이 뒤따를 것이란 생각에 이곳 부임지를 마뜩찮게

생각했다.


“축하합니다. 근데 고생되시겠어요.”

“아녀. 괜찮아. 어머니 혼자 계시는데 효도도 하고...”

누군가 물어올 때마다 고향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께 그동안 못 다한

효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거라며 애써 자위하기도 했고

사실 그럴 생각이었지만 금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서울로 향하니

어머니께는 내심 미안하기 짝이 없다.

혹시라도 품안에 자식이지 키워놓으면 소용없다는 말처럼

서운해 하실까 해서다.


하지만 어머니는 혼자서 밥해먹고 살림 사는 자식을 도와주지 못해

못내 미안하고 죄스러우신 모양이다.

사실 어머니가 사택으로 오신다 해도 그것은 감옥살이다.

자식 출근하고 나면 하루 종일 낯선 아파트에서 무얼 하실 것인가?


‘지금부터 홀로되는 연습을 하는 거야.’

속으로 되 뇌이며 혼자 사는 연습을 한지 벌써 4주째 접어들었다.

사람은 혼자 왔다가 병들고 늙어 혼자서 생을 마친다.

아내는 잠시 길동무가 되었다가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지 않고

각자 생을 마감하는 동반자일 뿐이다.


이제는 휴일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 왠지 모르게 안정이 안 된다.

가족의 품보다는 광주에서 혼자 있는 그것이 곧 일상이 되고 만 것이다.

버벅거리는 낯선 환경도 익숙해지고 보니 그것이 곧 일상이 되고 만다.

오늘도 점심을 먹자마자 서둘러 내려오고 말았다.


혼자 있고 보니 아내와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유가 있어 좋다.

그 동안 물 한 잔도 스스로 가지러 가기 싫어 애들과 아내에게 시켜왔던

내가 이제는 냉장고 어디에 무엇이 얼마큼 남았는지 싱크대 서랍 어느

구석지에 뭐가 있는지 알고 보니 혼자 있는 것도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지방근무를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나에게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정신없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라는 여유를 준 게 아닐까?  0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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