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울타리 너머에서 부르는 춘식이의 목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옵니다.
어둑한 죽석(1)竹席 방바닥에 엎드려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국어숙제를 하다말고 뽈딱 일어나 문을 여니 눈이 부셔옵니다.
아! 그렇더군요.
봄 햇살이 초가지붕 위에서 늘어지게 하품하고 있었습니다.
생 울타리에 뚫린 개구멍을 빠져나와
우리 키 만큼 자란 보리밭 사이로 춘식이와 함께 달려갑니다.
우리만이 노는 작은 언덕이 있거든요.
자꾸 고무신이 벗어지려 합니다.
발바닥에 땀이 나니 되게 미끄럽습니다.
우리는 양지바른 곳에 새순 돋은 삐비(2)를 뽑아 껌처럼 씹었습니다.
등허리가 따뜻한 게 정말 평화로운 봄입니다.
초가지붕 넘어 멀리서 뱀처럼 기어가는 기차가 아지랑이 속에서 가물거립니다.
‘삐~익!’
춘식이가 어느새 보리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가난한 소년기의 춘식이와 헤어진지가 40년이 넘었습니다.
그 녀석도 내 생각 하기는 할까요?
1) 죽석 : 대나무를 얇게 깎아 얽어서 만든 자리
2) 삐비 : 삘기의 방언으로 띠의 햇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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