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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이렇게 썽썽한 것을 버려야?

 

어머니를 뒤로하고 떠나올 때마다 마음이 개운하지가 않다.

올해도 짧은 추석을 마치고 차에 오르자 눈물 많은 어머니가 눈시울을 붉힌다.

‘칵, 느그 엄씨 눈에다 오줌을 펄펄 싸 부러라.’

살아생전 아버지의 말마따나 어머니의 흔한 눈물에 역정이 날 때가 있었다.


오늘은 차창 밖에서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차 뒤통수를 보며 떠나보내기 섭섭해 몇 발자국 앞서 걸어가신 걸까?

아니면 더 싸줄 것이 생각나 다시 들어가신 것일까?

승용차 문 닫는 소리가 마치 저승사자가 죽은 영혼 끌고 가듯 매몰차게

작별을 알린다.

차창을 내리고 어머니를 찾아보니 2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신다.

팔순을 바라보는 당신은 관절염 때문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먼발치에서 떠나가는 자식과 손자들을 보고 얼마나 섭섭하실까?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 놓은 듯 도열한

고향 길 차창 밖에서 짧은 3일 동안의 일 들이 가을바람을 타고 밀려들어온다.

‘이번에는 대청소 해야지!’

매년 시골집에 내려갈 때마다 작정했지만 마음뿐이었다.

노모 혼자 거처하는 시골집은 거실은 물론 안방에도 거미줄이 즐비하다.

나는 그런 시골집을 볼 때마다 짜증이 앞섰다.

찐득이 테잎으로 거실을 찍고 돌아다니는 아내에게 길들여진 때문이리라


‘좀 깨끗이 하고 살면 안 되나?’

당신의 뱃속에서 태어났음에도 어느새 아내의 편이 되어 있었다.

마실 다니는 것만도 고마운데 더럽게 산다며 푸념을 하는 내 가슴속에는

모든 것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려 드는 또 다른 잘못된 씨앗이 꿈틀거린다.

마치 어머니가 천년만년이나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아내와 제수는 냉장고에서 1년은 넘은 듯한 음식물을 정리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바가지와 바케쓰 나부랭이를 끄집어 내 놓기 시작한다.

나와 동생이 빗자루로 거미줄을 걷고 한바탕 북새통을 피우자 어머니가

미안한 듯 좌불안석이다.

그래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무엇을 잘 못했는가?

낳아주고 길러주고 노후에 혼자 살며 힘이 없어 청소를 못한 죄뿐 더 있는가?

파출부를 불러 2-3일에 한번 청소 해주면 될 터인데 시골이라 그럴 형편이

안된다며 지레 포기하는 것 또한 핑계가 아닐까?

목구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밀려 올라온다.


농사지을 때 쓰던 오래된 석작들이 쏟아져 나오고 양은그릇은 물론

프라스틱 다라이와 바께쓰들이 마당에서 원망하듯 나를 쳐다본다.

그런대로 아직은 쓸만한 것들이지만 버리기로 마음을 굳히니 시원섭섭하다.

잠시 담배를 피워 물고 한눈을 팔다보니 어느새 어머니가 양은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아따 내부러랑께 멀라고 도로 들여놔?”

“워메, 근다고 이렇게 썽썽한 것을 내부러야?”

“그럼 이걸 뭣에다 쓸라고 그래? 농사짓는 것도 아닌디....”

어머니는 감추고 나는 찾아내어 버리느라 적잖이 신경전을 벌였다.

끄집어내고 들여놓기를 반복하다가 아예 발로 밟아 찌그려 뜨려버리자

나의 행동이 서운한지 볼멘소리를 하며 또다시 눈시울을 붉힌다.


사실 노인이라 언제 갑자기 큰일이 벌어질지 모른데다 쓸모없는 물건이

자리만 차지하여 집안이 어지러워 작심을 한 것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삶을 대신 정리하기 위해 우리가 나서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다.


차창 밖으로 밀려 나가는 담배 연기를 보니 또다시 어머니의 잔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워메! 담배 좀 피지 말어야!”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이 잔소리를 누가 해줄 것인가?

갑자기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못 다한 효도가 마음에 걸린다.


0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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