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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음모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는 결혼이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 새로운 짝과 함께하는 진정한 홀로서기로

일상적인 상거래가 아닌 사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매개체를 통해

평생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할 성스러운 人倫之大事다.

어쩌면 그동안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뒷바라지

의식이기도 하다.

대학 보내며 마음조리고 청년백수 될까봐 애태우다 어렵게 직장을 잡고나면

만사 해결된 것처럼 홀가분한 기쁨도 잠시, 이제는 결혼걱정을 사서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고 보면 7080세대는 대학이건 직장이건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았다.

그것은 곧 배움이 일천했던 당시의 부모세대들이 도움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부모들은 결혼의 주도권만큼은 절대 놓지 않았다.

내가 키웠으니 내손으로 장가보내고 시집보내는 것이 자식에 대한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중매라는 그때의 단어는 어느덧 사라지고 이제는 소개팅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었고 결혼의 주도권도 부모에서 결혼당사자들에게 넘어갔다.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권한이 이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짝 찾기 풍습도 언제부턴가 장가를 들지 못한 노총각들이 늘어나면서

거리에는 베트남 처녀와 결혼을 알선한다는 펼침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좋게 보면 글로벌시대에 걸 맞는 사회변화라 할 수 있지만 이면에는 농촌의 붕괴의

원인이 컸고 더 나아가 직장 없는 노총각들을 기피하는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물론 직장은 있으되 본인의 처지를 착각하고 눈만 높은 속빈 강정도 없잖아 있다.


얼마 전 동료들과 저녁을 하며 동석한 서른여섯 노총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나이 40이 가까워지니 주위동료들이 눈높이를 낮추라며 안달이었다.

결국 화제는 외국에 거주하는 동포여성에게 장가드는 쪽으로 흘러갔다.

베트남 처녀는 외국인이라 그렇고 중국의 '조선족'이 좋다고는 하지만

지참금을 내는 것은 어딘가 상거래를 하는 것 같아 꺼림칙하니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처녀가 낫다는 식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었다.


느닷없이 우즈백 처녀가 등장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이유인즉슨 동생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내가 중매를 서면

만사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이라 불리는 동포들이 살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시베리아에서 아시아의 서쪽 맨 끝으로 강제 이주된

그들은 아직도 우리의 말을 간직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고려인'은 '조선족'보다 때 묻지 않아 좋으니 내가 나서서 중매를 하란다.


한참 얘기가 진행 되자 노총각이 휴대폰을 내보이며 사귀는 애인이 있단다.

동료들이 누구냐며 휴대폰을 낚아채 사진을 돌려보며 청문회 하듯 심문을 한다.

그가 사귄다는 처녀는 10살 차이로 아직 그 여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데

그녀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겠단다.

현대판 순정파라고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헛물을 켜고 있는 듯하다.

나이차이도 많고 그림이 안 어울리니 빨리 단념하고 눈높이를 낮춰 해외로 눈을

돌리라며 농반 진반으로 녀석을 닦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녀석은 단호하게 현대판 烈夫가 될 각오로 기다리겠단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낯선 젊은이가 내 방으로 찾아왔다.

말없이 부속실을 통과한 것으로 보아 나를 아는 사람일 텐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정쩡하게 다가오는 그를 향해 명함을 꺼내며 말을 건네자 우물거리며 바라본다.

“앉으세요.”  

“저어~. 직원인데요.”

"......?"

상사로써 그를 못 알아 본 것이 무관심으로 비추일까 미안한 마음에 과장되게

반가운 제스처로 어께를 두들겼다.

“자네는 날 알아보겠는가? 한번이라도 본적이 있는가?”

“예 조회 때도 봤고 회식 때도 봤습니다.”

“미안해. 못 알아봐서....  그런데?”

직원이 많아 못 알아본 것을 이해하라며 어느 팀에 근무하느냐고 묻자

교대근무 한단다.

교대근무하면 사실 만나기가 쉽지 않아 얼굴 알아보기가 어렵다.


“근데 뭔 볼일 있나?”

“네. 우즈베키스탄......”

녀석이 우즈백을 꺼내는 것을 보니 며칠 전 그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나이가 몇인가?”

“서른넷입니다.”   

“음~. 서른넷이면 아직 노총각소리까지는 안 듣겠는데...... ”

“......”  


“우즈백 처녀 괜찮아. 순수하고...”

우즈베키스탄 처녀에게 중매서달라는 말을 빼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중매를 두 번 섰는데 속설은 홀수를 맞춰야 한단다.

녀석을 중매하면 세 번을 채우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우즈백의 생활풍습, 국민소득, 고려인 처녀들이 바라보는 코리안 드림 등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곳에서는 교사나 의사들과 같은 고급인력들이 한국인 신랑감이 고졸만 되어도

감지덕지하고 영광으로 안다는 등 인텔리 신부를 얻을 수 있다고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했다.


“자. 생각해보고 결정해. 사진은 인터넷으로 서로 보내면 될 테고. 알았지?”

한참 설명한 후 마치 중매가 성사되기나 한 것처럼 단정지고 돌려보내려 하자

녀석이 머뭇거리더니 어렵사리 말을 빼낸다.

“지사장님. 저어~ 우즈백처녀와 결혼 안하면 안 돼요?”

“어엉?~”   

뻥 떠 묻는 나를 보는 녀석이 눈을 내리깔고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른다.

“뭔 소리? 노총각 면하려고 온 거 아냐? 하여튼 생각해보고 연락 줘.”

내가 너무 밀어붙인 탓인지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하고 꾸벅하더니 돌아간다.


며칠 후 그 녀석 팀장과 저녁을 하게 되었다.

“지사장님! 혹시 00대리 안 왔던가요?”

“엉. 왔어. 근데 어떻게 알아?”

“제가 가보라고 했어요.”

“녀석이 우즈백 처녀와 결혼 안하겠다고 하던데.... 내가 언제 지 중매선다 했간디?"

“하하하하! 노총각 두 놈에게 지사장님께 빨리 가보라고 했어요.”

“왜?” 


알고 보니 노총각 두 놈에게 내가 중매서기로 했다며 엄포를 놓았단다.

한 술 더 떠 내가 3월경 두 녀석을 데리고 우즈백으로 가기로 했다고

뻥을 친 것이다.

그러니 빨리 장가들던지 아니면 지사장님께 속내를 말하라고 얘기했단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녀석은 교대근무를 마치자마자 나를 찾아온 것이다.

결국 팀장의 음모에 나도 속고 녀석도 속고 말았다.

그나저나 이태백이 없는 세상은 언제나 오려나?

08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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