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서 그런대로 괜찮게 사는 편인 지만이네는 사랑채가 따로 있습니다.
어둑한 사랑은 항상 매캐한 담배 냄새로 숨을 쉬기도 어렵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어떤 때는 새끼를 꼬시고 또 어떤 때는 장기를 두시며
다투시기도 합니다만 사랑에서는 항상 웃음소리가 나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돌아가며 나무를 한 짐씩 해 오면
한겨울 내내 따뜻하게 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농민’이라고 쓰인 잡지를 얻기 위해 사랑으로 놀러 갔습니다.
물론 비료 포대를 접어 만든 딱지도 좋지만 ‘새농민‘으로 만든 딱지는 땅에 딱 붙어
웬만해서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쭈빗 쭈빗 망설이다 사랑 문고리를 잡아당기니 어른들이 한방 가득 앉아 계십니다.
사랑 들창문 옆에는 12달이 한꺼번에 그려진 농가 월력이 한 장 붙어 있고
아랫목에는 국회의원의 둥그런 사진이 붙은 달력이 도배해 놓은 듯 붙어 있습니다.
농한기라 할일이 없는 어른들이 화투를 치고 계십니다.
그 속에는 항상 검은 안경을 끼고 다니는 아랫동네의 무서운 삼촌도 끼어있습니다.
그 삼촌은 약방에 감초처럼 아무데나 끼어들어 나쁜 짓만 골라 하고 다닙니다.
아래 동네 사는 궁둥이가 큰 덕배 누나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문을 항상 달고 다니며
상가에서는 노름하다 싸우기 일쑤인 그 삼촌 말입니다.
해거름 판에 사랑에서 나올 때면 꼭 술에 취해 큰소리로 노래 부르며 비틀비틀 걸어갑니다.
사실 저런 삼촌은 우리 동네에서 멀리 이사가버렸으면 좋겠습니다만
같이 놀아주는 어른들이 더 밉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자 나가 놀라며 쫓아내십니다.
“할부지! 저~ 저어~ 새농민 한권 주세요!”
머뭇거리며 춘식이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내자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가
지나간 새농민을 한권 꺼내 주십니다.
우리는 펄쩍 펄쩍 뛰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표지에는 검정 안경을 쓴 별 2개를 단 장군이 떠억 버티고 서있습니다.
“재건“이라는 구호와 고리땡(골덴) 바지를 입은 면사무소 직원들이
삽을 들고 일하는 사진도 멋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달달 외고 있는 ‘국민교육 헌장’도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손톱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지를 접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우리들은 결전을 기다리는 용사들처럼 심장이 뛰고 있었습니다.
** 딱지는 종이를 네모꼴로 접어 만들고 종이가 딱딱할수록 잘 넘어가지 않아 좋다. 딱지 따먹기 놀이는 상대의 딱지를 훌떡 넘기면 된다. 물론 발을 상대 딱지 옆에 가까이 붙이고 바람의 힘에 의해 넘어가게 하는 것이 요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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