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이야기들

아! 어쩌란 말인가

 

가을이 깊어가는 이른 아침!

산책길의 고즈넉한 아침이 조용히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몇 번인가 마주쳤던 중년의 아낙이 바쁜 걸음으로 스쳐지나가고

길섶에 핀 쑥부쟁이가 골목시장 좌판대의 할머니처럼 초연히 나를 맞는다.


고개 돌려 국기봉을 올려다보니 옅은 가을 안개 속에 등산객이 서있다.

하루를 여는 그들의 부지런함을 시샘하며 그간의 게으름을 탓해 보지만

그건 배부른 자의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무거워진다.


옛 선현 김상헌의 싯귀처럼 시절이 하 수상한 세월!

가뜩이나 사는 것이 힘들고 경제가 엉망이라 가을이 풍성하지가 않다.

산길을 돌아 내려오니 재건축 아파트 공사장이 아침을 여느라 분주하다.


100% 분양을 마쳤다는 축하 프랭카드가 가슴을 떠억 벌리고 뽐내고 있다.

‘재주도 좋지! 이렇게 어려운 때 미분양이 속출하는데!’

3-40대 캉가루족이 늘어 간다는 뉴스를 떠올리며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생각에

적이 안심이 되는 건 한낱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 따름이다.


대학 나오고 군대 갔다 오면 호사는 그만두고라도 처억 처억 취직하여

제 갈 길로 갈 줄 알았더니 이제는 취직 걱정을 짐으로 넘겨주다니.....

에라! 썩을 놈의 세상!

너도 나도 머리 띠 두르고 제 몫을 챙기려다 다 죽어가는 걸 왜 모르는가?


다 큰 자식 취직 걱정하며 놀이터 정자를 돌아드니 못 보던 사람들이 정자에 앉아

고개 숙여 신문을 뒤적이고 뭔가를 끄적대고 있다.

‘산책을 나왔으면 한바퀴 돌든지 뛰지 않고 왠 청승들이람?‘


무심히 지나치려던 눈길을 돌려 뒤돌아보니 운동복차림이 아니다.

그들은 하루일당 일감을 기대하며 공사장에서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잔손이 들어가는 일감들이 쏠쏠하게 나오는 모양이다.


아! 이일을 어찌할 것인가?

삶이 이렇게 힘들고 고달파서 어찌할 것인가.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케리가 아웃소싱은 실패한 정책이라며 부시를 공격하던데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도 생산기지는 중국과 동남아로 옮기고 하나같이 하이칼러 직업만을

선호하고 있으니 사람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정작 사람이

남아도는 현실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가을걷이가 끝나면 아궁이에 불 지피고 따뜻한 햇볕 받으며 유유자적하던

농사짓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이유가 뭘까?

지식기반사회에서 엉뚱하게도 가난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내가

혹 극우 보수주의자가 아닐까?

'일상의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초신 감독을 만나던 날!  (0) 2004.12.31
교토의정서(원자력은 정말 독인가?)  (0) 2004.11.22
산책길 텃밭  (0) 2004.10.18
꽃잎의 유서  (0) 2004.10.13
어무니! 인자 올라갈께!  (0) 2004.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