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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산책길 텃밭

 

반갑지 않은 갈비가 내리고 난 아침! 

오르내리는 산책길 옆 불법 경작지에 낙엽이 쌓이기 시작한다. 

누군가 텃밭을 일구어 들깨와 토란을 심어 놓은 쓸쓸한 텃밭이 휑하다.

나는 얼굴 없는 그들의 소일거리에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다.


불법 경작을 하도록 내버려둔 구청도 문제지만 그 당사자가 더 문제다.

왜 구청에서는 ‘경작금지’라는 팻말 하나 세우지 않는 걸까?

애꿎은 구청을 원망해왔지만 정작 경작자를 만나도 나또한 말 한마디 못할 것이다.


제법 텃밭의 면모를 갖추는 폼이 시골냄새를 물씬 풍긴다.

아마 그들은 농사를 짓다가 어찌 어찌하여 나처럼 서울이라는 도시로 흘러들어왔을 것이다. 

어릴 적 비 오던 날 우산을 흉내 내며 머리에 쓰고 내달리던 토란!

토란은 세 줄기만 남기고 계속 뜯어줘야 하는데......


그러던 지난여름 태풍이 불던 날 거대한 아카시나무가 산책길과 텃밭을 덮치고 말았다.

며칠 뒤 구청에서 아카시를 토막 내어 텃밭에 가지런히 쌓아두고 쓰러진 토란 대는

모두베어 버렸다. 

텃밭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속이 후련했다.


이미 묵사발이 된 들깨 줄기는 흔적조차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텃밭은 잘 정리되어 무와 배추씨앗이 뿌려졌다.

저지하는 사람과 끊임없이 텃밭을 일구는 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

난 구경꾼이지만 그들의 싸움에서 구청이 이기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헌데 그 후 누군가 또 텃밭을 짓이겨 놓아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그 텃밭 위로 한잎 두잎 나뭇잎들이 떨어져 덮어가고 있다.

비에 젖은 나뭇잎이 거름이 되어 텃밭이 아닌 나무들 잔치가 벌어지면 좋겠다.

짓 뭉개놓은 텃밭을 보고 좋아하는 나는 타고난 훼방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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