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이야기들

옥수수 세 개

  

“아가. 사평가자고 안 허냐.”

집에 있기가 답답하여 일을 핑계대고 사무실에 들러 돌아오니

사평에 있는 흙집연구소를 가자는 어머니가 달뜬 목소리로 내 눈치를 살핀다.


그렇잖아도 멀뚱멀뚱 앉아 있을 수 없어 아내가 제안한 모양이다.

아내 또한 내려 온지 일주일이 되어간지라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사택을 이사하느라 피곤하여 쉬고 싶었지만 늦은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시내를 빠져나오니 제법 거름발을 받은 들판에 황새 몇 마리가 살금살금 기고 있다.


부모와 자식은 전생에 어떤 관계였을까?

당신의 몸 일부를 쪼개 받아 태어나서 당신의 젖꼭지를 빨며 자란 인연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묘하다.

하지만 당신보다 내 자식에게 더 많은 애정을 느끼다니 나는 그저 죄인이다.


얘기를 나누며 달리다 보니 어느덧 어스름 들녘에 저녁 안개가 피어오른다.

내일 병원에 갈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지고 어서 광주로 돌아가고만 싶다.

늙으면 귀찮은 존재가 된다더니 오늘따라 어머니가 귀찮다.
효도가 무엇일까?

부모가 자식 며느리 눈치 보지 않고 마음이 편하면 그것이 효도가 아닐까?


여름 날 저녁은 해가 남아 있어도 저녁 먹을 시간이 빨리 기운다.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되짚어 광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리할 수 없어 거실로 들어섰다.


“길 먼데 그냥 가지 멀라고 내리냐?”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별로 싫지 않은 기색이다.

“그럼 저녁 묵고 갈래?”

말과는 달리 내놓을 반찬이 없어 내 눈치 보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차창 밖으로 음식점이 보였지만 별로 생각이 없어 지나쳐 온 것이 맘에 걸린다.


“우리 가자. 집에 가서 밥 묵자”

“그래라. 광주 가서 묵어라.”

서름한 얼굴로 서성거리다가 아내에게 말을 빼니 어머니는 어서 가라며 재촉한다,

손님처럼 서성이다 차에 오르자 손을 흔드는 어머니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무거운 짐 덜어놓듯 홀가분해야 할 텐데 마음이 편치가 않다.

들판에 퍼진 저녁안개 속으로 아이들이 소를 몰고 걸어 올 것만 같다.

이미 타관이나 다름없이 변해버린 고향 들녘 너머로 어머니의 눈물이 보인다.


“어머니랑 같이 식사하고 좀 쉬었다 갈걸 그랬어.”

“무얼. 점심 묵은지 얼마나 됐다고....”

뚱하게 앞만 바라보며 차를 모는 내 속마음을 아내가 모를 리 없다.

도곡온천을 빠져나가자 길옆 원두막에서 옥수수를 파는 부부가 짐을 꾸리고 있다.

‘벌써 옥수수가 익었나?’


옥수수 한 자루를 차에 싣고 어머니를 떠올리니 또다시 맘이 무거워진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그것도 한 자루나 싣고 가자니 죄스럽기 짝이 없다.

“우리 되돌아가자. 어머니가 옥수수 좋아하시잖아.”

“그럴까?“

못이긴 척 차를 돌려 고향집으로 향하는 도로 위로 노란 헤드라이트 불빛이

포근하다.


“우메 먼일이다냐? 먼일 있냐?”

“아니. 벌써 깡냉이가 나왔데.”

무척이나 반겨하는 어머니를 보니 울컥 목이 멘다.

“반찬 없는데 뭣에다 묵으끄나 잉”

어머니는 항상 개밥처럼 식은 밥을 드시는데 나는 주지육림에 춤을 추는

변사또였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아내와 어머니의 얼굴이 포근하게 겹친다.


이튿날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도착하니 벌써 도착한 어머니가 불안한 모습으로

오가는 의사와 간호사 눈치를 살핀다.

“어무니 멀라고 왔어? 아무것도 아닌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검사를 마치고 나오자 어머니의 옆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어디가 아프다디?”

“아직 몰라! 나중에 결과 나온데”

“.....”

“당신 얼렁 올라가고....  나 사무실 들어갈라니까....”

“이따 차에 감서 묵어라.”

서울로 떠나려는 아내에게 검은 봉지 하나를 건네준다.

엊저녁에 당신 드시라고 남겨둔 옥수수 세 개를 삶아 온 것이다.

한사코 만류하던 아내가 봉지를 받아들고 눈물을 글썽인다.


어머니 앞에서는 아픈 것도 불효인 것을..........

‘어무니 아무것도 아니여! 걱정하지마’  0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