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 한다.
언제부턴가 박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노래방을 기피하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어쩌다 노래방을 가도 고작 육자배기 늘어지듯 발라드이니 판을 깨기 딱 알맞다.
더구나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숨이 헉헉 막힐 만큼 맘이 다급해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실 내가 박치가 된 것은 순전히 노래방 반주기 때문이다.
반주기 가사를 따라가다 보니 색깔이 변하는 가사에 맞추는 버릇이 생겼고
결국 박치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음)
노래와 가무를 즐기는 우리 민족은 흥이 나면 노래를 부르며 피로를 달래곤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 당연히 2차 가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하지만 나는 우스개 소리로 아가리를 찢어버린다며 2차 가는 것에 찬물을 끼얹곤 했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아가리’였을까?
2차는 대부분 노래방이나 호프집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양주집을 들르기 마련인데
노래방은 그렇다 치고 호프집을 들르면 이튿날 머리가 개운하지가 않다.
그래서 호프집은 싫고 더구나 양주집은 짧은 치마의 여종업원들과 시답잖은 농지거리를
하는 것이 맘에 내키지 않기도 하지만 기실 속내는 터무니없이 비싼 술값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노래방도 호프집도 양주집도 싫어하니 ‘아가리’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성향에 어울리지 않게 며칠 전 직원들과 함께 노래방을 거쳐 급기야
3차로 나이트클럽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아가리를 찢는다고 말은 해왔지만 사실 호기심이 없는바 아니었다.
“물이 좋습니다. 한번 가시죠.”
직원들의 꼬드김을 물리치기도 뭣하여 못이긴 척 따라 들어간 것이다.
나이트클럽 주변에는 대부분 대리운전을 해준다는 젊은이가 접근하기도 하고
속칭 물이 좋다며 쭉 빠진 처녀들이 유혹하기도 한다.
애써 가슴을 펴고 지하 나이트클럽으로 발을 옮겼다.
아마 나이트클럽에 와본지가 10년은 넘은 듯도 싶다.
나이트클럽 하면 우선 맘이 편하지가 않다.
덩치가 황소 같은 젊은이들이 고개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구부려 ‘어서옵쇼’라며
맞이하는 것이 ‘너 잘 걸렸다’라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것만 같아 기분이 별로다.
마치 거미줄을 쳐 놓고 나방이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거미처럼 음흉하다는 생각 또한
지울 수가 없고 왠지 사기꾼 소굴에 끌려 들어가는 것처럼 긴장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맘껏 즐기고 무너져 보세요.”
귀가 찢어질 듯한 음악 속에 흘러나오는 멘트가 손님들을 무대로 끌어낸다.
누구누구 생일이라면 팡파레를 울려 주는가 하면 한잔씩 쭈욱 들이키라며
교묘하게 매상을 올리기도 한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에 앉자마자 직원들이 상의를 벗어 제치고
춤을 추러 나가는 폼이 한두 번 와본 솜씨가 아니다.
나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맥주만 홀짝거리고 앉아 춤추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은 무대 바로 앞이라 춤추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어 그런대로
구경하는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정신 나간 듯 춤을 추는 무대에서는 자신이 연출가이고 주인공이다.
어떤 이는 온통 홀을 헤집고 다니며 춤 솜씨를 뽐낸다.
춤도 잘 추고 볼일이다.
내 바로 앞에서는 두 여인네가 객석을 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무대복을 입지 않아 그렇지 치어걸 못지않은 춤 솜씨다.
그들은 어쩌면 낯선 남정네에게 선택받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여인들은 어떤 핑계를 대고 이곳에 온 걸까?
문득 10여년 전 영등포 거리로 술을 마시러 다니던 생각이 떠오른다.
스텐드빠가 유행이었고 어쩌다 나이트클럽을 가곤 했지만 술과 춤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부킹이 우선이 아닌가 싶을 만큼 내놓고 종업원이 부킹을 해준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경기가 풀린 건가?
많은 사람들이 한 마리 부나비가 되어 가고 있었고 내 마음 한구석에서도
부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무대로 끌려가 어정쩡하게 몸을 흔들다 슬며시 빠져 나오니
아리송한 밤이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0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