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큰댁에 가는 것은 마치 동화 속의 나라에라도 가 듯 가슴이 뛰었다.
할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오면 나와 동생들은 혹시라도 누구 한사람 떼어놓고
갈까봐 가슴 졸이며 아버지 눈치를 보았다.
큰댁이 좋은 것은 사촌 누나와 형들이 있기 때문이지만 탯자리이기도 한 것이
더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큰댁은 언제나 내 영혼의 일부를 남겨두고 온 것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굴뚝도 없이 검게 그을린 돌 틈새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퉁이를 돌아
뒤란으로 돌아들면 넓은 대밭이 있고 그 너머는 곧바로 야트막한 산이다.
마당가 우물을 덮고 있는 밑둥치가 쩍쩍 갈라진 늙은 감나무는 이상하게도
단감과 떨감이 한 나무에서 열린다.
예년과 다름없이 올 추석에도 큰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산으로 성묘를 나섰다,
유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간 선산에는 이제 막 억새풀이 연보라색 꽃을 피우고
묘지 몇 개가 자리하던 선산에는 이미 공동묘지처럼 많은 묘가 누워있다.
그곳에는 당숙도 내 또래의 사촌형도 옛사람이 되어 누워있는 것이다.
이미 옛사람이 된 그들은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 그들의 전생을 얘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성장기를 보낸 이곳 양지쪽에 누워
내가 찾아온 것을 꿰뚫어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릎 꿇어 성묘를 하며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인생이 무상하다.
내 맘을 알리 없는 자식들이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에게 절을 하며 소풍 나온 듯
즐거워한다.
그 옛날 사촌형들과 달렸던 논둑길도 도랑을 막고 고기를 잡던 작은 개울도
이제는 농약의 오염으로 인해 죽어버렸다.
어릴 적 정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노란 벼 모개가 바람에 넘실댄다.
40여년이 지나 장년의 주름진 얼굴로 큰집 고샅길로 접어들었지만
그 옛날 개구쟁이들의 수다소리는 간곳없이 고요하다.
어디선가 고인이 된 덕삼이가 헛기침하며 반길 것 같은 토담을 돌아드니
이미 묵혀버린 문전옥답은 잡초만 무성하고 찌그러져가는 스레트 지붕이
검버섯 핀 노인처럼 힘없이 나를 반긴다.
“새 아짐!”
“워메, 대롱(도련님) 오셨소? 시방도 새아짐이간디?”
환갑을 넘긴 새아짐이 나를 반긴다.
사촌 형의 아내가 되어 시집온 형수를 우리는 새로 온 아주머니라는 뜻에서
지금도 새 아짐이라고 부른다.
주름이 가득한 새아짐이 둘이 앉기에도 좁은 방으로 한사코 들어오란다.
거절 못하고 들어 앉아보니 내가 이렇게 좁은 방에서 발을 뻗고 잠을 잤던가 싶다.
조카며느리가 지져 놓은 전(빈대떡)을 내온다.
고개를 돌려 우물가를 바라보니 색 바랜 봉숭아 이파리가 힘없이 나를 반긴다.
문득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던 시집간 누님이 웃으며 반기는 듯 하다.
좁디좁은 방에 앉아 전을 몇 점 주어먹으며 하릴없이 눈을 돌리니
처마 밑에 제비집 2개가 붙어있다.
‘맞아, 제비들이 들락거렸지?’
튼실해야할 제비집은 쭈글쭈글한 한 어머니 젖처럼 빈약하기 짝이 없다.
“제비 사요?”
“아~니! 안 살어!”
새아짐이 시집 온 그 때는 제비들이 둥지를 틀었는데 이제 새아짐 얼굴만큼이나
쭈그러진 제비집이 힘없이 붙어있다.
그 많던 제비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파괴해버린 농촌에는 그 많던 메뚜기도 그리고 그 많던 제비들도
이젠 한 낱 전설 속으로 사라져가는 듯하여 마음이 허하다.
덧없는 세월을 뒤돌아보며 마당으로 눈을 돌리니 간짓대 끝에 붙은 잠자리가
왕방울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제비가 떠나버린 마당에서 여유를 부린다.
해코지하는 이가 없으니 마음이 편할 줄 알지만 긴장이 없이 사는
그런 삶이 무에 좋을까?
밥만 먹고 잠만 자는 돼지 같은 삶은 영혼을 좀 먹는다.
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일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05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