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목백일홍을 간지밥나무라고 불렀다.
정말 간지럼을 타는지 매끈한 줄기를 긁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는 가늘게 웃으며 몸을 떨었다.
그건 당연히 간지럼을 탈거라는 나의 고정관념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요 며칠 전부터 회사 정원에 서있는 백일홍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모두가 잔치를 벌이던 봄날에는 구경꾼인양 잔치판에 끼어들지 않던 그가
의연한 자태로 꿈을 키워오다 뒤늦게 ‘나홀로‘ 잔치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향도 별반 없고 그렇다고 꽃도 탐스러운 편이 아니다.
초여름이 지난 지금에서야 꽃망울을 터트리는 이유가 무엇이며
하루에 몇 송이씩만 꽃망울을 터트리는 심보는 또 무엇인가?
정말 백일동안 꽃을 피울 작정일까?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이고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구름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녀석이 아름다운 것은 잔치가 끝나버린 무더운 여름날에 피어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나는 왜 그가 봄에 꽃을 피웠을 거라고 지레짐작하였던 것일까?
그건 그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칭찬은 사다리가 없이도 어린애를 지붕에 올라가게 한다하지 않던가.
열매처럼 망울진 꽃망울을 자세히 보니 어느 순간 분칠을 시작한다.
어찌 보면 밀가루를 바른 생과자를 떠올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님을 만나기 위해 최소한 분단장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함일까?
그러다가 꽃망울을 터트릴 때면 그동안 못 이뤘던 꿈을 발산하기라도 하듯
머리카락보다 가는 꽃대 일곱 여덟 개를 한꺼번에 방사형으로 끄집어낸다.
그 가는 꽃대가 신기하리만치 꽃잎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한 몸에서 일곱 여덟 개의 꽃대를 밀어내는 것은 봄날 못 이룬 꿈을
한풀이하려드는 것일까?
그동안 내게 버림받아왔던 백일홍이 친근하게 속삭인다.
‘대기만성이 뭔 줄 아시오?’
‘남들이 장에 가니 덩달아 거름지고 장에 가듯 준비성 없이 촐랑대지 마시오.‘
버즘 핀 것처럼 볼품없던 줄기가 여인네의 날씬한 다리처럼
이제야 사랑스럽게 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단점보다 장점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싹튼다.
자신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조용히 미래를 설계하며 말없이 꿈을 키워온
간지밥나무가 나에게 잠시 고객 숙여 생각에 잠기게 한다.
분노와 증오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나 자신이 황폐해지고 만다.
상대의 단점을 덮어주고 장점을 찾아 나서면 평화가 오는 것이다.
마치 빨간색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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