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길을 나는 얼마나 발이 닳도록 걸어 다녔던가!
뒷골목 담벼락에서 못 치기하던 그 옛날 춘식이가 구성지게 나를 부르는 것 같다.
“오메! 오니라고 고상들 했다!”
대문간에 들어서니 밤새워 기다리던 어머니의 반기는 목소리에 힘이 솟는다.
반가움을 몸으로 표현할 줄 모르는 난 마치 무 캐먹다 들킨 놈처럼 슬그머니
어머니 손 한번 잡은 후 손님처럼 서먹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어머니 또한 의당 그래왔듯이 말주변 없는 자식에게 서운한 내색 없이 와준 것만도
고마워하신다.
“시상에! 배 고프겄다! 밥 묵어라!”
“아니! 묵었어!”
거실 한쪽에서 상보를 뒤집어 쓴 밥상이 빠끔히 고개를 내민다.
혹시라도 우리가 굶고 잘까봐 미리 밥상을 차려 놓은 것이다.
오면서 주전부리를 하여 내키지는 않지만 어머니가 멋쩍어 할까봐 숟가락을 잡으니
우리들이 밥 먹는 모습을 오진(1) 듯 지켜보신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양보하면 어머니가 이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어무니! 한바퀴 돌고 올까?”
이튿날 긴 잠에서 깨어나 차에 시동을 걸자 어머니의 몸뻬(2)가 펄럭인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칠순이 넘었는데도 운전석 옆에 앉아 여행하기를 좋아하신다.
아니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아들과 함께하고 싶은 작은 소망일 것이다.
1년에 두서너 번 얼굴을 보이는 자식이 얼마나 보고 싶고 외로웠을까?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며 함께하는 것만큼 오붓한 시간 또한 없을 것이다.
나는 왜 고향을 떠나 살아야 하고 왜 노모를 혼자 버려두는가?
애들처럼 기분 좋아하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왜 그래? 서울에 뭔 일 있냐?”
“아니! 좋아서 그래!”
차에 오르자 알 듯 모를 듯한 청년들이 멀뚱멀뚱 쳐다보며 지나간다.
고향 떠난 지 30년을 넘고 보니 모르는 이가 태반이라 내가 오히려 서먹하다.
“어무니! 혹시 쟤들 광석이 아들 아닌가?”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들이 아랫동네 후배 광석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추석 연휴동안의 짧은 동행!
내려갈 때는 올라올 일을 걱정하고 올라올 때는 혼자 남을 어머니 걱정에 맘이 무겁다.
연휴가 끝나가자 마치 휴가 나온 이등병 귀대할 때처럼 마음이 바빠진다.
허겁지겁 서두르며 말없이 짐을 싸는 자식을 보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고춧가루, 된장, 삶은 옥수수, 뒤란에서 따낸 단감, 늙은 호박 한 덩어리.....
이것저것 챙겨 주시며 한 개라도 더 싸 보내려는 당신의 사랑!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서운함 보다도 무거운 짐 벗은 듯 홀가분해진다.
바람처럼 왔다가 홀연히 떠나는 그런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 마음은 어떠할까?
내 맘을 알리 없는 어머니는 ‘품안의 자식’을 떠올리며 또 한번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차가 막힐 것 같으니 새벽 두시에 출발하자!”
말은 아내에게 하지만 어머니께 통보하는 것이다.
당신이야 푹 재워 따뜻한 아침 먹여 보내고 싶겠지만 단호하게 내뱉는 내말에
작별의 서운함보다 힘들게 올라갈 자식걱정을 먼저 한다.
잠을 청한지 1분도 안되어 태평하게 코를 고는 아들!
잠시 후면 떠날 아들의 잠든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실까?
혹시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방정맞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무거워진다.
“인나그라! 인자 올라 가야제!”
꿈속을 헤매다 말고 눈을 뜨니 여기가 서울인 듯 정신이 혼미하다.
혹시나 차 막혀 고생할까봐 마치 통학하던 시절 새벽밥 지어주시던 그때처럼
선잠을 주무셨을 것이다.
“그냥 놔두고 가그라!”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나서려다 잠자리를 보니 개지 않은 이불이 맘에 걸린다.
매미 허물 벗듯 몸만 빠져 나가면 어머니 몫으로 남울 것이다.
“할무니! 안녕히 계세요!”
“오먼 좋은디 해마다 고상이다 잉~! 차 조심 허그라 잉!”
손자들이 인사를 건네자 오히려 미안해하는 어머니!
도망치듯 차에 오르니 가로등 불빛 속에 어머니의 눈물이 아롱거린다.
내가 빠져나간 잠자리에 휭 한 찬바람이 돌면 얼마나 가슴이 아리실까?
“어무니! 서울로 가서 합쳐 살아!”
“아니어야! 느그 집에 가면 감옥살이여야! 친구도 없고~!”
어머니의 말에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드는 나는 얼마나 더 살아야 맘을 알까?
한 밤중에 고향집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달리는 가슴 속에 못 다한 얘기가 응어리져
서러움이 북받친다.
1) 오지다 : 마음이 흡족하다 의 전라도 사투리
2) 몸뻬(monpe) : 일할 때 입는 바지의 일본말로 바지의 통이 넓고 발목을 묶게 되어있음
어머니. 어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짠해진다. 만약 고향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면 고향은 나에게 어떤 모습일까? 어머니가 없는 고향은 고향이 아니다. 유년기의 꿈과 추억을 간직한 고샅길도 춘식이와 뒹굴며 싸웠던 뒷동산도 머나먼 꿈에서나 본 듯 낯설고 서먹한 모습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비록 동기간들이 고향에 남아있다 해도 아마 발걸음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산소에 들러도 하늘에 엉덩이 한번 치켜들고 손님처럼 휑하니 돌아 나오고 말 것이다.
나도 고향이 서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도 소파에 등을 묻고 TV 속에 오가는 귀성객들을 구경꾼처럼 바라보며 느긋한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좋을 텐데..... 난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을 부러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건 십수 년 동안 귀향길 고속도로에 시달려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해 전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부터는 나에게도 고생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그건 장남이 차례를 지내야하니 고향에 내려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장남이라는 짐을 지고 힘들게 걸어왔는데 이 얼마나 공평한가? 겉으로 내색은 않지만 명절 증후군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오던 아내 또한 내심 반기는 눈치다.
“어무니! 차례 지내게 올라오시오 잉!” “엉! 느그들끼리 지내라!” “어무니 안 올라오면 뭔 재미로 지내?” 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설날 마치 순사가 용건도 말하지 않고 지서로 부르듯 전화를 하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별로 밝지 않다.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라며 괜찮다고 말씀하지만 당신 혼자 쓸쓸히 명절을 맞는 속내가 편할 리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서울에서 덩그맣게 차례지내는 나나 고향에서 혼자 버티는 어머니나 명절은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일을 어쩌면 좋을까? 차례지내는 법도가 어긋나더라도 설은 서울에서 쇠고 추석은 고향에서 쇠면 어떨까? 고육지책으로 설과 추석을 번갈아 서울과 고향에서 지내기로 하고보니 그 또한 그럴 듯하다. “어무니! 추석은 시골에서 지낼라요! 벌초도 해야 허니께!” “제사를 옮겨 댕기면 안 될 것인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추석차례는 고향에서 지내겠다는 말에 그제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밝아온다. 근 이태동안 서울에서 지내던 차례를 접고 고향 길에 오르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애비 속도 모르고 좋아하는 애들에게 귀성길 방송이 호들갑을 떨며 흥을 돋운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 파김치가 되어 고향동네로 들어서니 낯선 발자국을 알아챈 개들이 컹컹 짖어 대며 텃세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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