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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자유여행4) 노상주차장에서 바보가 되었다





(디오클래티아누스 궁전 골목길)

 


넷째 날이 되었어.


‘스플리트’라는 도시로 가는 길이야.


안개 때문에 시야거리가 5M도 안 되는 낯선 길을 조심조심 달렸어


그곳은디오클레티아누스라는 사람이 태어난 곳인데 3세기에 로마 황제가 되었대.


그가 은퇴 후 개인 궁전을 지은 곳인데 리바라는 거리를 끼고 있는 항구야.


로마의 황제가 로마 사람이 아닌 크로아티아 사람이라니 조금 의아했어.


지도를 보면 크로아티아는 부메랑같이 생겼는데 서쪽 아드리아 해 너머가 로마야.


미국도 그렇고 어쩌면 다문화 국가일수록 번성할 수 있는 기반이 튼튼한 것 같아.


(톨게이트)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아드리아해를 오른 쪽에 두고 내려가기로 했어.


중간에 자다르라는 도시에서 점심을 먹고……


그런데 아드리아 해는 나오지 않고 톨게이트가 나오는 거야.


이건 뭔가 잘못된거야.


해안도로가 아닌 고속도로를 달리는 길임에 틀림 없는 거야.


그나저나 톨게이트가 나타나자 가슴이 철렁했어.


첫날 톨게이트 지날 때 카드가 안되어 애를 먹었거든.


징수원이 없는 전자카드 전용 게이트로 들어서서 한국의 체크카드를 욱여 넣었으니 먹히겠어?


현금 수납도 안되고 뒤에 차들은 줄지어 있고….


버벅대고 있으니 옆 톨게이트 징수원이 건너와 결재 해줬어.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종탑에서 바라본 스플리트 구 시가지)


 

아드리아 해는 구경도 못하고 너무 일찍 스플리트에 도착했어.


15:00 숙소 체크인 시각인데 너무 이른 시각이라 도로변 아무 곳에나 주차하기로 했어.


스플리트는 대부분 우리나라처럼 노상주차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노상주차장은 Zona1, Zona2 이런 식으로 안내판이 붙어있는데 차를 댈 곳이 없는 거야.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간신히 주차공간을 발견했는데 코인식 주차장이야.


카드정산식 주차장보다 코인주차장이 더 비싸.


싸고 비싼 걸 가릴 형편이 아니지.

 

(주차정산기)



주머니에 있는 코인 몇 개로 우선 1시간짜리 주차티켓을 끊어 운전석에 올려 놓았어.


아마 검표원이 주차티켓을 체크하는가 봐.


코인을 바꾸러 나섰어.


그런데 은행도, 마켓도 코인을 바꿔주지 않는 거야.


마켓에서 과자를 50쿠나를 내밀었는데 10쿠나 이하 거스름만 코인으로 주는 거야.


코인주차를 포기하고 카드주차장에 주차하려고 보니 카드주차장이 어딘지 알 수가 있어야지?


주차를 하고 돌아서는 중년남자에게 물으니 Zona2가 카드식 주차장이래.


근데 카드정산기 조작방법을 알 수 없는 거야.


온통 크로아티아 글자로 새겨 놓았으니.


딸아이가 그 사내를 붙들고 카드정산기 사용법을 전수 받았어.


아마 내가 물어 봤으면 바쁘다고 대충 설명해주고 가버렸을 걸? ^^


대부분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친절하더라.


우선 저녁 8시까지 주차티켓을 끊어 운전석 위에 올려놓고 시내구경에 나섰어.


(디오클래티아누스 궁전)


 

시내 구경을 하는 내내 불안한 거야.


혹시 누군가 주차하다가 차를 찌그러뜨릴까 봐서…….


너도 알다시피 내 성격이 미래의 걱정을 사서하는 조급한 성격이잖아?


오후에디오클레티아누스궁전과 리바거리를 구경하고 나니 저녁 6시가 넘었어.


9월의 6시면 벌써 어둑한 시간이야.


지도를 보니 주차한 곳과 숙소가 800m 거리야.


주차 공간 찾기가 너무 힘들어 그 자리에 야간주차를 하기로 했어..


근데 아침 8시까지 주차권을 끊으려고 하는데 카드정산기가 작동을 안 하는 거야.


‘야간에는 무료주차인가?’


 


하여튼 차를 길거리에 놔둔 채 케리어를 끌고 불안한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어.


지친 다리를 끌고 이미 어두워진 길을 따라 숙소 근방까지 왔으나 또 숙소를 못 찾겠는 거야.


우리는 왜 이렇게 숙소를 찾을 때마다 헤맸는지 몰라.


어둑한 담벼락에 케리어를 세워놓고 아내에게 파수꾼을 시켰어.


분명히 숙소 근처가 맞는데 …...


산책 나온 동네 아주머니가 함께 찾아 나섰는데 간판이 없으니 그 아줌마도 못 찾는 거야.


근데 딸아이가 이곳 저곳 알아보고는 ‘30A’ 번지가 어디냐고 묻는 거야.


“그곳은 엄마가 가방 지키고 있는 곳인데? ?”


아줌마가 몇 번지냐고 묻는다는 거야


번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서 깜박하다니 완전히 붕어 IQ가 되었나 봐.


 

 (리바거리)


대문에 붙은 초인종을 조심스럽게 눌렀더니 잠시 후 불이 켜지더라.


서글서글하게 생긴 남자가 나와 우릴 보더니 깜짝 반기며 2층으로 안내하는 거야.


‘No Show’인 줄 알았대.


나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도 없고


주인 남자는 내 이름이 적인 종이피켓을 손으로 들어 보이는 거야. ㅎㅎ


가져간 햇반으로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리바거리로 나갔어.


바다를 바라보고 왼쪽이 우리 숙소가 있고 숙소 왼쪽에는흐바르가는 페리호 선착장이 있고….


낮에 보았던 거리와는 다른 이색적이었어.

(리바거리 공연)


항구하면 떠오르는 비릿한 갯내음, 지저분한 바닷가, 가로등 몇 개 떨고 있는 곳인데.


항구를 끼고 있는 밤거리는 마침 전통 무용공연 중이었어.


우리도 따라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넋 놓고 구경했어.


 (새벽 선착장에서 본 페리호)


 

흐바르 가는 선착장이 저리 넓은데 어디에 차를 주차하는 거지?’


우리가 예약한 표는 맞는가?’


걱정을 사서 하며 죽은 듯 잠에 떨어져 눈을 뜨니 새벽이야.


아침잠이 많은 내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


혼자 조심스럽게 산책 겸 페리오 타는 선착장으로 향했어.


차를 어디다 주차하는지 걱정이 되어 불안한 거야.


페리호가 출발하는 선착장을 확인하고 돌아왔지만 정확한 건지 모르겠더라고….

 


딸아이랑 여행을 해보니 의외로 배포가 있었어.


요새 젊은이들은 생각하는 게 여유가 있고 자신감이 있어.


우리 세대는 이웃 읍내만 가도 타관이라며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암 떴는데......


딸아이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더라.


이제는 딸아이만 바라보는 처지로 완전히 서열이 바뀌고 말았어.


말하자면 저절로 위계질서가 세워진 셈이지.